[아침을 열며] '담대한 구상'이 남긴 숙제

  • 박문우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수석연구원, 북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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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29   |  발행일 2022-08-29 제30면   |  수정 2022-08-29 06:53
尹, 비핵화 후 경제지원 제안
MB '비핵개방3000' 복사판
담대한 구상 거부하는 북한
체제 유지 위해 핵 포기 안해
대화·협상으로 신뢰 쌓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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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우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수석연구원, 북한학 박사)

지난 8월15일 윤석열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첫 대북 구상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는 한반도와 동북아, 그리고 전 세계의 지속 가능한 평화"에 필수적이며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그 단계에 맞춰 북한의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구상'"을 제안했다. 구체적 내용으로 "대규모 식량 공급, 발전과 송배전 인프라 지원, 국제 교역을 위한 항만과 공항의 현대화 지원, 농업 생산성 제고를 위한 기술 지원, 병원과 의료 인프라의 현대화 지원, 국제투자 및 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추진하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비난 일색이었다. 특히 김여정은 19일 '허망한 꿈을 꾸지 말라'는 담화를 통해 "'담대한 구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중략) 동족 대결의 산물로 버림받은 '비핵·개방·3000'의 복사판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다. 특히 "'북이 비핵화 조치를 취한다면'이라는 가정부터가 잘못된 전제"라며, "우리의 국체(국가의 근간)인 핵을 '경제협력'과 같은 물건 짝과 바꾸어보겠다는 발상"은 "꿈이고 희망"이라고 비난했다. "미국까지 어쩌지 못한 '북핵 포기'의 헛된 망상"이라며, '북한 핵'은 남북이 논의할 의제가 아니며, 경제협력과 맞바꾸는 수준의 비핵화 의사 역시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또한 "앞으로 또 무슨 요란한 구상을 해가지고 문을 두드리겠다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절대로 상대해주지 않을 것"이라며 향후 어떠한 남북 대화에도 응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다.

사실, 윤 대통령의 지난 5월10일 취임식에서 밝힌 '담대한 계획'을 구체화한 이번의 '담대한 구상'은 '북한 비핵화'를 전제로 한 '경제 지원'이라는 틀에서 과거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과 유사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비록 "경제뿐 아니라 북한이 제기한 안보 우려와 요구사항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비핵·개방·3000'과는 다르다"는 정부의 설명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북한의 '선(先) 비핵화'를 전제하고 있고, 비핵화 이후의 보상만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지난 25일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를 기념하는 '선군절' 62주년이었다. 노동신문은 이날 논설에서 "사탕이 없이는 살 수 있어도 총알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투철한 입장을 지니시고 국방공업을 선차로(먼저) 내세우신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애국 의지에 (중략) 현대적이며 자립적인 국방공업으로 발전되고 우리 조국은 세계적인 군사강국, 당당한 핵보유국의 지위에 올라섰다"고 주장했다. 또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 세계에서 국가의 안전과 인민의 안녕, 믿을 수 있는 진정한 평화는 그 어떤 적도 압승하는 자위력에 의하여 담보된다"며 핵 보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북한은 김정일 시대부터 국제사회의 제재를 감수하며 현재까지 유일하게 이루어 낸 것이 '북한 핵'이다. 김정은에게 있어 '핵'은 아버지 김정일의 유산이며, 체제 유지의 근간이다. 때문에 '북한 비핵화'를 넘어 '한반도 비핵화'의 청사진과 북한이 핵 없이도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신뢰를 쌓는 방법론이 마련되어야 한다.

북한은 대화의 문을 닫았다. 하지만 그 문을 여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제재와 압박'으로 북한을 움직일 수 없음은 지난 수십 년간의 북핵 협상 과정에서 얻었던 교훈이다. '힘'과 '안보'만을 강조해서는 '지속 가능한 평화'를 이룰 수 없다. '진정한 평화'는 대화와 협상 그리고 협력과 공존을 통해 이룰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박문우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수석연구원, 북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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