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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
지난 18일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상대방 동의 없는 대화 녹음을 금지하는 내용의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윤 의원 등은 사생활의 자유, 통신비밀의 자유를 보장하고 음성권 침해를 막기 위해서 개정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며, 미국 등 주요국에서도 비밀녹음을 금지하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이에 대해 비밀녹음이 금지되면 사회 고발과 언론 활동을 크게 위축시키고 진실증명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면서 반대하는 견해도 상당하다. 지난 26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법안에 반대한다는 응답은 64.1%, 찬성한다는 응답은 23.6%로 두 응답 간 차이는 40.5%포인트였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와 제14조에서는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녹음자가 대화 당사자 중 한 사람으로서 상대방 몰래 그 대화를 녹음하는 행위는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배되지 않는다. 다만 민사적으로는 문제가 될 수 있다. 2018년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음성이 함부로 녹음되거나 재생·방송·복제·배포되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며 이런 '음성권'은 헌법 제10조 1문에 의해 헌법적으로도 보장되는 권리이므로, 음성권에 대한 부당한 침해는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다만 녹음자에게 비밀녹음을 통해 달성하려는 정당한 목적이나 이익이 있고 비밀녹음이 필요한 범위 내에서 이뤄져 사회윤리나 사회통념에 비춰 용인될 수 있다고 평가받을 경우에는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설명했다. 결국 비밀녹음은 음성권 침해의 불법행위가 될 수 있지만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예외적으로 허용된다는 입장이다.
이런 정당한 사유 중 하나가 법원에 비밀녹음을 증거로 제출하는 경우이다. 비밀녹음의 증거능력에 대해 자유심증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민사소송법에 따라 비밀녹음도 증거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비밀녹음을 금지하면 피해자의 증거확보가 어려워지며, 특히 사회적 약자는 강자의 동의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증거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해질 우려가 있다.
그러나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영상정보처리기기는 범죄예방, 시설안전 등 목적으로만 공개된 장소에 설치하도록 하고 있고, 목욕실, 화장실 등 사생활을 현저히 침해할 우려가 있는 장소에는 설치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또한 영상정보처리기기를 설치, 운영하는 경우에는 설치 목적 및 장소, 촬영 범위 및 시간 등이 포함된 안내판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영상정보처리기기를 이용한 비밀녹화가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고 개인정보 수집, 이용 시에도 명시적, 사전동의를 요건으로 해서 프라이버시를 엄격히 보호하고 있는데, 비밀녹음을 증거수집이라는 예외적 상황을 고려해서 원칙상 합법이라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만약 합법이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녹음사실을 고지하는 것이 인격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닐까. 결론적으로 법이론상 비밀녹음을 적법하다고 보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비밀녹음 자체는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비밀녹음의 순기능을 고려해 비밀녹음을 하지 않고는 진실을 밝힐 방법이 없는 상황 등 정당화 요건이 있는 경우에는 이를 허용하는 방향을 고려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향후 프라이버시 보호와 진실증명이라는 충돌하는 가치를 균형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논의가 진행되기 바란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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