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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아이스퀘어벤처스 대표 |
최근 물가가 크게 치솟으면서 '인플레이션(inflation)' 공포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현상이다. 지난 7월 기준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보면 미국이 8.5%, 유로존은 8.9%, 한국은 6.3%였다. 한국이 낮은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시장에서 물건을 사보면 우리 물가상승률이 과연 6%대에 불과할까? 하는 의구심이 앞선다. 더욱이 지난 2년간 급등한 집값과 주가 및 유가 등을 고려할 때 체감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은 듯하다.
물가상승률이 6.3%라는 것은 똑같은 물건을 1년 전에 비해 6.3% 더 많이 지불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플레이션의 가장 대표적인 위험은 물가가 소득보다 더 빨리 상승해 구매력을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화폐가치 손실을 초래하여 소비자는 소득이 줄어든 것과 같아 '고통 사이클'에 진입하게 된다. 특히 주택이나 건물을 보유하지 않은 서민들이나 봉급생활자들은 화폐가치 하락으로 실질 소득이 감소하게 되어 생활수준이 하락한다. 인플레이션은 상이한 집단에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사회를 전반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든다.
코로나 이후 미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서 엄청난 돈이 풀렸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얼마 전까지 물가는 오르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 이유는 풀린 돈이 실물경제로 들어가지 않고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으로만 들어가 자산 버블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년 들어 코로나19 규제가 점차 해제되고 경제활동이 재개되면서 물가가 급등하기 시작하였다. 결과적으로 천문학적인 규모로 실시됐던 통화량 증가 정책은 인플레이션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와 곡물 공급까지 차질을 빚는 등 '공급망 충격'이 더해지면서 1981년 이후 41년 만에 가장 높은 인플레이션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하여 네 번 연속 금리를 인상하였다. 금리인상은 돈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을 의미하므로 원론적으로 금리가 오르면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가격은 하락하고, 금리가 낮아지면 자산가격이 오른다. 코로나 극복을 위해 돈을 많이 풀고 금리까지 제로수준을 유지한 결과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가격이 폭등하여 물가상승의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소비가 폭발하면서 물가가 급등하게 된 것이다. 이에 각국 중앙은행은 금리를 인상하여 통화량을 줄임으로써 최근 주식과 부동산 등이 하락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인플레이션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시민들은 피부로 생생히 느끼는 고물가와 금리인상 탓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가계부채가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에서 금리인상은 채무자들에게 빚으로 쌓아 올린 모래성과 같은 허망함을 느끼게 할 수 있다. 금리인상으로 늘어난 이자부담은 다른 소비를 더욱 위축시키게 된다. 소비위축은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으며 경제위기로 번질 수 있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힐 수도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70여 년 동안 물가상승률이 5%를 넘는 상황에서 미국 연준이 경기침체를 유발하지 않고 기준금리를 인상해 물가를 안정시키는 데 성공한 사례는 없다고 보도했다. 따라서 우리 정부에서도 경기침체를 일으키지 않고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것이 매우 어려운 과제라는 것을 전제하고 실업대책과 사회안전망 보완에 나서야 한다. 특히 물가상승과 금리인상이 저소득층에 더 큰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밥상물가 급등과 급증한 이자부담으로 고통받는 저소득층 보호를 위한 선별적 보조금 지급 등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이재훈 아이스퀘어벤처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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