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 칼럼] 정론직필

  • 이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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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02   |  발행일 2022-09-02 제23면   |  수정 2022-09-02 06:55

[이재윤 칼럼] 정론직필
논설실장

'우리가 보지 못한 대한민국'(민음사). 요즘 서점가 신간 베스트셀러다. 영국 출신 기자 라파엘 라시드가 썼다. 10여 년간 서울에 거주하며 뉴욕타임스, 가디언, 데일리 텔레그래프 등에 기고해 온 저널리스트다. 코로나19 발발 초기 라시드는 '신천지가 한국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요지의 기사를 뉴욕타임스에 실었다가 문빠의 표적이 된 적 있다. 최근엔 '대통령실 기자단 소속 일부 기자들이 치어리더처럼 대통령 발밑에서 굽실거리는 모습이 민망스럽다'고 비판해 우파의 공격을 받았다. 우익 매체들이 그를 확대 인터뷰하고, 조국 전 장관이 그의 기사를 공유하는 것을 어찌 해석해야 할까. 경계인의 고통은 저널리즘의 숙명이다.

한국 언론에 대한 그의 비판은 혹독하다. '참담하다'고 한다. '그런데도 별다른 대안 없는 미디어 환경에 노출된 한국의 독자'를 안타까워했다. 출판기념 언론 인터뷰는 더 충격적. 기자가 물었다. "한국에서 가장 객관적인 언론은?" "미안하지만, 없다." 꼭 맞진 않는다. 그렇다고 마땅한 반박거리를 애써 찾고 싶진 않다. 요즘 국민 정서와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슨 소용 있겠나. 폴리널리스트를 강요하는 사회, 정치 편향 언론인으로 가득한 매체, 필히 부패한다. 편(偏)을 만들고 당(黨)을 짓는 즉시 기자의 소임은 망실하고, 금과옥조 '사실'과 '진실'은 왜곡된다. 언론계 전문가 50인도 같은 지적을 했다. '우리 언론에서 가장 먼저 버려야 할 태도'로 '정파성'을 꼽았다.('신문과 방송' 2021년 12월) 양당제의 첨예한 대결 구도에서 언론마저 균형을 잃으면 공론의 장은 붕괴한다. 갈등을 부추기는 언론. 선거철마다 일종의 내전 상태를 경험하게 되는 데도 언론의 책임이 없다 못 한다.

정론직필(正論直筆)이 무엇인가. 불편부당(不偏不黨)의 자리에서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는 것이다. 편·당에 속한 사람은 "왜 저 언론은 오락가락하지?"라고 불평한다. 항상 진보 편, 항상 보수 편, 늘 집권 여당 편, 늘 야당 편인 일관성 있는(?) 언론은 저널리즘의 가치에 충직하다 할 수 없다. 정치적 프로파간다이거나 상업적 프로모션일 뿐이다. '저 언론의 정체는 뭐냐? 어느 편이냐?'는 질문은 제발 하지 마시라. 저널리즘에 대한 모욕이고 모독이다.

항상 객관적인 언론이 어디 있겠는가. 완전한 무편향도 가능하지 않다. 성찰과 반성을 반복하는 진지함으로 부족을 메워갈 뿐이다. 요즘 한국 언론은 대체 어느 편에 서 있는가. 언론은 왜 편을 가르나. 어찌 언론에 편을 강요하는가. '한국 뉴스 신뢰도'는 해마다 최하위에 머물다가 지난해 쪼금 올랐다. 그래도 46개국 중 38위.(디지털뉴스리포트 2021) 특정 매체가 '영향력·불신 동반 1위'(마크로밀엠브레인·기자협회보 8월)라는 기이한 현상이 빚어진 건 우연이 아니다.

온전히 언론만의 잘못은 아니다. 뉴스 수용자들이 극단적 편 가르기를 경계해야 언론도 제 기능에 충실할 수 있다. 정론의 언론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게 쉽지 않은 어지러운 시대다. 비판하는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시도가 노골적이다. 86년 만의 언론인 노벨평화상 수상, 언론의 위기를 역설적으로 웅변한다. "최선의 대응은 계속 보도하는 것"(마리아 레사·2021년 노벨평화상 수상 언론인)뿐이다.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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