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생태, 역사, 기후재앙이 중첩되는 소광리 금강송 숲

  • 남송희 남부지방산림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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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08   |  발행일 2022-09-14 제25면   |  수정 2022-09-08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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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희 지방산림청장

금년도 국민적 관심이 가장 큰 사건 중 하나는 역대 최장 시간을 기록한 울진 대형산불이다. 무려 열흘 동안 산림공무원과 소방·군·경찰 그리고 자원봉사자들까지 4만여 명이 하나 돼 산불을 진화했다.

산불 중 초기 3일은 원자력발전소, 가스저장시설과 마을 등 도심 주변에, 나머지 7일은 소광리 금강송 숲의 경계 지역에서 산불이 지속됐다. 수많은 산림공무원이 비포장 임도와 숲길을 방화선 삼아 삽과 갈퀴로 낙엽을 긁고 호스로 물을 뿌리면서 20m 높이의 산불로부터 결사적으로 숲을 지켜냈다. 왜 산림공무원들은 무모할 정도로 산불로부터 이 지역을 보호하고자 하였을까.

소광리는 200년 이상 된 8만5천여 그루의 소나무들이 잘 보전된 우리나라 최대의 금강송 군락지다. 생태·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역사·문화적 가치를 생각하면 산림에 종사하는 모든 임업인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소광리 금강송 숲의 가치를 아는 산림공무원으로서 산불로 이 지역이 훼손되는 것은 역사의 죄인이 되는 심정이었다.

소광리 금강송은 문화재 복원용 목재를 생산하는 지역으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궁궐을 짓는 데 사용됐으며, 최근에는 화재로 소실된 국보 1호 숭례문을 복원하는 데 사용됐다. 이러한 금강송 숲을 보호하기 위해 조선 시대 숙종(1680년)은 '나라 허락 없이 입산을 금지한다'라는 왕명을 담은 황장봉계 표지석을 설치했고, 소나무를 베면 곤장 100대의 중형에 처했다.

1900년대에는 일제의 목재 수탈, 한국전쟁, 전쟁 이후 사회·경제적 혼란기에 불법 벌채가 있었으나, 1959년 육종보호림으로 지정된 이후 무분별한 벌채가 중단됐다.

산림청은 금강송 숲을 체계적으로 보전하기 위해 1982년 소광리 금강송 숲을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해 자생하고 있는 희귀식물과 특산식물 그리고 멸종위기종 1급인 천연기념물 산양을 보호하고 있다. 또한, 마치 삿갓을 쓴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하늘을 바라보는 듯한 모습의 500년 소나무(1995년), 비틀어진 수형을 가진 못난이 소나무(1995년), 안일왕산 능선에서 신하를 거느리듯 금강송 숲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대왕 소나무(2014년)를 보호수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금강송의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기 위해 2011년부터 개장한 숲길은 국가 숲길 1호로 지정돼 있다. 숲길은 총구간으로 약 9~10㎞, 3~7시간이 소요되나 숲의 생태적 수용력을 고려해 탐방객은 예약된 사람만 이용 가능하다. 구간당 하루 80명의 제한을 두고 산불조심 기간 외 5월부터 11월까지만 숲길을 즐길 수 있다.

숲길은 CNN 선정 '세계 50대 트레킹 장소'이자 농림축산식품부 '한국관광 100선'으로 선정됐고, 2017년에는 '산림청 명품숲'으로 지정돼 우리나라 '대표 명품숲'으로 손꼽히고 있다.

소광리 주변에는 2000년 동해안 산불과 2022년 울진 산불의 피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도화동산이 있다. 2000년 삼척에서 울진으로 넘어온 동해안 산불의 아픔을 간직하고자 조성된 동산이지만 이번엔 울진에서 삼척으로, 산불이 반대로 진행되면서 엄청난 피해가 중첩된 곳이다. 22년 전 산불로부터 복원되기 시작한 어린나무들이 이번 산불로 다시 검게 불탄 모습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불행이 닥친 후에야 일상 행복의 가치를 안다는 말이 있다. 우수한 산림자원은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 후에 그 가치를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소광리와 도화동산을 동시에 방문한다면 금강송 숲의 진정한 가치와 기후변화의 재앙을 되짚어 보고 뒤늦게 후회하지 않는 예방조치를 생각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남송희 <남부지방산림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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