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부터 바닷길까지, 포항 힐링로드 .10] 장기의 바다, 모포에서 두원까지…긴 해안선 따라 들어선 어촌마을…바다가 토해낸 옛 이야기 줄줄이

  • 류혜숙 작가,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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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05   |  발행일 2022-09-05 제11면   |  수정 2022-09-05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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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양포리는 만도 크고 항구도 크고 오가는 사람도 많다. 양포항에 정박한 어선들 뒤로 양포리가 보인다. 이곳 양포에서는 문어와 아귀가 제일 유명하다.

포항의 남쪽 장기면의 해안선은 14.5㎞ 정도다. 산을 등지고 바다에 접한 좁고 긴 땅에 12개의 어촌마을이 들어서 있다. 뇌성산 자락에 기대어 있는 모포리, 크고 깨끗한 모래해변이 있는 대진리, 갓 모양의 바위가 있는 영암리, 일출암이 솟아있는 신창리, 커다란 양포리, 이언적이 칠언절구를 남긴 계원리 그리고 포항의 남쪽 끝 지경(地境)에 자리한 두원리 등이 둘 혹은 셋의 작은 마을을 품고 있다. 사람들은 파도가 실어다 준 큰 나무와 아주 오래된 줄다리기 줄을 아무렇지도 않게 신으로 모시고, 기이하게 생긴 바위를 마을 이름으로 삼고 산다. 순정하고 순정하여 언제나 발이 젖어 있는 이 땅의 사람들은 풍성한 수목처럼 소리 없이 일하고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친근한 미소를 건넨다.

◆모포리에서 대진리까지

산은 바다 가까이에서 등줄기를 곧추세우고 서 있고, 마을은 그 산자락을 꽉 붙잡고 바짝 기대어 있다. 산은 뇌성산, 마을은 모포리(牟浦里)다. 모포는 어느 지역보다도 봄에 보리가 일찍 되는 포구라 하여 보리 '모(牟)' 자를 붙여 모포라 했다고 한다. 뇌성산에는 봉수대가 있었고 모포에는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걸쳐 수군기지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 효종 9년인 1658년에 동래로 기지를 옮긴 뒤에도 해창(海倉)을 설치해 화물 교역장으로 번창했다고 한다.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방풍림을 지나 마을 안길로 들어선다. 마을은 길고 좁은 띠처럼 이어지고 산자락은 손 뻗으면 닿을 듯 따라온다. 마을 안 빈 터마다 방풍나물 텃밭이다.

산은 듬직한 소의 등처럼 흐르다가, 풀 뜯는 말의 목덜미처럼 남쪽으로 흘러내린다. 산이 내려앉은 자리에 모포2리, 칠전마을이 있다. 뇌성산에서 뇌록(磊錄)·인삼(人蔘)·오합(蜈蛤)·유뢰(維瀨)·봉청(蜂淸)·자지(紫芝)·동철(銅鐵) 등 7가지 보물이 난다고 칠전(七田), 또는 옻나무가 많다고 칠전(漆田)이라고도 한다.

뇌성산 아래 도로 가까이에 우물 하나와 아주 오래된 줄다리기 줄이 보관되어 있는 당집이 서 있다. 줄다리기 줄은 칡덩굴과 굴피로 엮은 줄 한 쌍으로 백 년이 넘은 것이라 한다. 모포리 사람은 이 줄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신다. 옛날 장기 현감이 꿈을 꾸었는데, 뇌성산에서 한 장군이 용마를 타고 내려와 우물물을 마신 후 '이곳은 만인이 밟아주면 마을이 번창하고 태평하며 재앙이 없을 것'이라 했다 한다. 이후 현감은 줄을 만들어 줄다리기를 통해 땅을 밟게 했다.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과 한가위 때 제를 지내고 모포 줄다리기는 포항의 여러 축제에서 재연되고 있다. 마을 끝 해변에 방풍나물밭이 아주 넓다.

길은 잠시 도로로 이어진다. 대화천을 건너 해군생활훈련대라는 군 시설과 자그마한 솔숲 사이를 통과해 대진리(大津里) 백사장에 닿는다. 생각보다 크고 깨끗한 모래사장에 놀란다. 대진이라는 이름에서 수군만호진의 기미가 느껴진다. 오늘날 군 시설이 들어서 있는 것도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땅의 유전이 아닐까 싶다. 너른 바다에, 한가로이 해수욕을 즐기는 청년들이 눈부시다.


포항의 남쪽 장기면 해안선 14.5㎞
산 등진 좁은 땅에 12개 마을 자리

모포리 수호신 '100년 넘은 줄 한쌍'
줄다리기 통해 번창·태평 이끌어

장기천이 바다 만나는 곳 '일출암'
육당 최남선 '조선 10경'으로 꼽아

신창2리엔 '부챗살 바위' 의기양양
60년전 '사라' 태풍때 밀려왔다고

제일 먼저 달빛이 비친다는 양포리
큰 항구로 문어·아귀가 제일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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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천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일출암이 우뚝 서 있다. 옛날부터 생수가 솟는다 하여 날물치 혹은 생수암(生水岩)이라 불렀던 바위다. 육당 최남선은 이곳에서의 일출을 조선 10경 중 하나로 꼽았다.

◆영암리에서 신창리까지

대진리 해안 길을 따라 영암리(靈岩里)로 간다. "여긴 3리, 남쪽으로 2리, 1리." 물질을 하고 나온 아주머니의 젖은 얼굴이 환하다. 길 한가운데에 금줄을 두른 마른 솔가지 더미가 서 있다. "골목 할아버지시지. 옛날에 큰 나무가 떠밀려 왔어. 그 자리에 모신 마을의 신이야." 골목에서 만난 동네 할아버지께서 찬찬히 말씀해주신다. "저기 방파제 옆 바다에는 동그란 바위가 있었어. 그 위에 부처님이 계셨는데 파도에 떠내려갔다고 해. 옛날 일이지." 바다가 토해내고 또 삼킨 옛이야기들이 어르신들에 의해 전해진다.

영암 1리 마을 한가운데 어느 댁 마당에는 갓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옛날 과거를 보러 가던 한 선비가 잠시 쉬면서 벗어두고 간 갓이라고도 하고, 조그맣던 바위가 해가 뜰 때마다 삿갓 모양으로 자랐다고도 한다. 그래서 마을은 갓바위 혹은 관암(冠岩)으로 불리다가 이 바위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지는 영험이 있어 영암(靈巖)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한다. 영암에 소원하나 얹어 둔다.

영암리의 남쪽 가장자리는 장기면의 대표적인 암석해안이다. 해안 절벽으로 감싸인 안온하고 작은 항구에 조용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절벽으로 끊어진 해안 길은 다시 국도로 이어져 신창리(新倉里)로 향한다. 멸치 찌는 냄새, 멸치 마르는 냄새로 그득한 신창1리 포구를 지나 금곡교를 건넌다. 다리 북쪽은 죽하, 남쪽은 대양, 내륙 쪽이 신양, 합해서 신창1리다. 금곡교 아래에는 장기천이 바다로 흘러간다. 천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일출암이 우뚝 서 있다. 옛날부터 생수가 솟는다 하여 날물치 혹은 생수암(生水岩)이라 불렀던 바위다. 육당 최남선은 이곳에서의 일출을 조선 10경 중 하나로 꼽았다. 일출암 남쪽으로 모래밭이 길다. 고소한 생선 냄새가 폴폴 풍겨온다. 해변은 가자미 덕장이다. 가지런한 가자미들이 꾸덕꾸덕 말라가고 있다. 신창리 앞바다는 포항지역 최고의 가자미 낚시터라 한다.

생선 냄새가 희미해지면 신창2리 '창바우 마을'이 시작된다. 포구를 지나다 보면 곳집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마을 이름이 유래된 창바우(倉岩)다. 마을 사람들은 매년 정월과 6월이면 창바우에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파도 소리가 똘망똘망하게 들린다. 마을 앞바다는 거대한 암반이다. 암반은 자연산 돌미역과 전복·고둥·성게·따개비 등이 살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이 되고 이를 기반으로 마을에서는 여러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마을 끝자락에는 '부챗살 바위'가 있다. 믿기 어렵지만 이 바위는 60년 전 사라 태풍 때 밀려온 것이라 한다. 태풍의 위력은 정말이지 대단한 것이구나 싶다.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를 부챗살 바위는 마치 예전부터 이 자리가 제 자리인 양 의기양양 기묘한 자태를 뽐내고 있고, 그 옆에는 작은 풀장이 원래부터 제 자리인 양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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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해양부가 어촌어항 복합 공간으로 조성한 양포항에는 해상 공연장(위)과 요트 계류장등이 갖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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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포항 북방파제 산책로에 랜드마크처럼 빨간색 등대가 서 있다.

◆양포리에서 두원리까지

양포리(良浦里)는 양월리(良月里)에서 온 이름이라 한다. '달이 뜨면 제일 먼저 달빛이 비치는 곳'이라는 뜻이다. 양포리는 만도 크고 항구도 크고 오가는 사람도 많다. 거리에는 다방이 많이 보인다. 다방 수는 항구의 크기를 가늠하는 가장 쉬운 척도다. 다방보다 많은 것은 아귀탕 간판이다. 양포는 문어와 아귀가 제일로 유명하다고 한다. 양포항은 국토해양부가 개발한 어촌어항 복합 공간으로 해상 공연장과 산책로·요트 계류장 등이 갖춰져 있다. 항구에는 뱃일하는 어부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공원에는 텐트를 치고 앉은 캠핑족들의 게으른 오후가 흘러간다. 방파제 산책로 아래에는 낚시꾼들의 하루가 멈춰 있다.

양포만 남쪽에 툭 튀어나온 곶인 니바우끝이 만을 닫으면 길은 지나온 번잡함을 감쪽같이 지우며 계원리(溪院里)에 닿는다. 마을 앞에 작은 바위섬 하나가 멀리서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옛날 작은 봉수대가 있었다는 소봉대(小峰臺)다. 섬은 방파제로 이어져 있고 봉수대는 무너져 흔적이 없다. 지금은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한산한 마을이지만 옛날에는 이 풍광에 반해 찾아드는 문인들이 많았다 한다. 소봉대에 올라 노래한 회재 이언적의 칠언절구가 시비에 새겨져 있다. '대지 뻗어나 동해에 닿았는데/ 천지 어디에 삼신산이 있느뇨./ 비속한 티끌 세상 벗어나려니/ 추풍에 배 띄워 선계를 찾고 싶구나.'

푸른 풀이 돋아있는 자갈 많은 계원리 해변에는 이름을 얻지 못한 바위들이 고적한 아름다움으로 서 있다. 도롯가 절벽 아래로 이름 없는, 혹은 이름 모를 수많은 바위를 보내고 또 보내고, 부드러운 고개를 넘었나 싶을 때 지경(地境)을 알리는 커다란 표지석을 만난다. 포항시 남구 장기면 두원리(斗院里), 이곳이 포항 해안선의 남쪽 끝이다. 산은 바다로부터 살짝 물러서 있고, 도로 양쪽으로 이어지는 땅에서 단구 지형을 느낀다. 그래서 투명한 버스정류장 안에는 바다가 넘치고, 간잔지런한 집들은 층층이 바다로 간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 : 포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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