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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영 경북본사 총괄국장 |
수십 년 전, 이 땅에서 자판기를 처음 접했던 우리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의 심정이 이랬을까. 동전이나 지폐를 넣으면 커피나 음료가 나오는, 지금 보면 지극히 단순한 과정을 왜 그리 어려워하고 두려워하기까지 했는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햄버거 매장 키오스크를 홀로 마주한 이후 생각이 많아졌다. 누군가에겐 아주 평범한 일상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주 큰 일일 수도 있겠다 싶어, 당시 어르신들이 겪었을 긴장감과 당황스러움, 그리고 불안함과 민망함이 충분히 전해진다.
얼마 전 '심심(甚深)한 사과' '금일(今日)' '사흘' 등과 같은 단어를 오독한 사례가 잇따라 소개되면서 문해력 논란이 일었다.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한 사과'를 '밋밋하거나 지루한 사과'로 받아들이거나, 오늘이라는 뜻의 금일을 금요일로 이해한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정말 몰랐을 수도, 장난삼아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뭔가 찝찝하고 불편하고 걱정스러운 느낌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요즘 자주 거론되고 있는 리터러시(literacy)는 문자화된 기록물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획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하고 있는 데다, 언어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신조어나 외래어가 일상으로 파고든다. 그 자리서 밀려난 말은 사용 빈도가 급격히 줄거나 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세대 간 갈등과 반목, 불통과 단절을 일으키게 하는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통상 젊은 층은 문해력에, 노년층은 디지털 또는 미디어 리터러시에 각각 약한 면을 보이기 마련이다. 보고 읽긴 하지만 오롯이 이해하지 못하며, 단어 자체가 생경해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모르는 것이 자랑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죄는 아니지 않나. 문제는 그다음이다. 우기거나 뻔뻔해지면 싸한 분위기가 생성된다. 한술 더 떠 조롱하거나 무식하다고 무시하면 충돌은 불가피하다. 이쯤 되면 본질과 상관없이 비난과 분노가 자리한다. 부정확한 자기 확신과 어설픈 오만이 마주 달리면 그러하다. 특히 AP·UPI·AFP·로이터 등 세계적인 통신사보다 전파력이 더 강하다는 '카더라 통신'은 부질없는 논쟁의 빌미를 제공하며 사태를 악화시키기도 한다.
문해력이나 첨단기술 및 신조어 지식 부족으로 인한 세대 간 불통은 결코 가볍거나 지엽적이지 않다. 여기에 선택적 정의가 판을 치는 정치성향까지 결합되면 정말 암울해진다. 어떤 현인은 '무지(無知)와 싸웠지, 무지한 사람과 싸운 게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엘빈 토플러도 '21세기 문맹은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학습과 재학습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식의 정의를 내리기도 했다.
많이 배웠든 못 배웠든, 나이가 많든 적든, 같은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룰과 시대 흐름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모르면 찾아보고, 낯설면 배워야 하는 것이 어쩌면 현대인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키오스크 주변에서 잠시 지켜보다가 '도와드릴까요'라는 말을 건네 준 다음 순서의 청년이 너무 고마웠다. 행여, 그 친구가 '그것도 못하냐'는 표정으로 재촉했더라면 아마 분위기가 험악해졌으리라. 민족 최대의 명절이 다가온다. 이번 추석에는 이것저것 실생활에 필요한 기술과 사용법을 친절히 알려드리는 디지털효도를 해보면 어떨까 싶다.
장준영 경북본사 총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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