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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영 (제주대 국어교육과 교수) |
코로나19에 의한 팬데믹 상황 속에서 잠시 멈춰 있던 다양한 행사들이 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재개되고 있다. 특히 어린이, 청소년, 일반인 등을 대상으로 한 문학 백일장이 지역과 유관단체 주관으로 활발하게 개최되고 있어 주목된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제주대 국어교육과에서도 지난주 금요일(9월2일) '훈민정음 반포 576돌 한글날 기념 제57회 전도(全島) 중고등학생 문학 백일장'이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이번 백일장에는 제주도 내 190여 명의 중고등학생이 '일상, 꿈, 로봇'이라는 제재를 가지고, 시와 산문(수필·소설) 중 하나를 선택하여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쳤다. 이처럼 제주대 국어교육과의 '전도 중고등학생 문학 백일장'은 오랜 역사와 전통 속에서 제주도 청소년들의 문학 축제로 지속해 오고 있다.
지금의 백일장은 보통 시나 소설 또는 수필과 같은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 글짓기 대회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백일장이라는 말이 어디서부터 유래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은 것 같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백일장의 기원설은 대개 두 가지이다. 먼저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태종 14년(1414) 왕이 성균관에 거동하여 540여 명의 유생(儒生)들에게 거자백일장(擧子白日場)을 치르게 하였다는 기사가 있다. 여기에서 거자(擧子)는 과거 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갖춘 유생들을 지칭하는 말이며, 백일장의 백일(白日)은 밝은 대낮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과(大科)에 응시할 자격을 갖춘 성균관 유생들이 한낮에 시문(詩文)을 짓는 글쓰기 시험을 백일장으로 불렀고, 그것이 현재의 백일장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이다. 또 다른 유래설로는 뜻 맞는 사람들끼리 망월(望月), 즉 보름달이 뜬 밤에 시재(詩才)를 견주던 망월장(望月場)과는 달리, 한낮에 이루어진다고 해서 백일장이라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두 가지 중 어떠한 것이 맞는지를 따지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단지 전근대 사회의 문화적 산물인 백일장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의미 있는 존재로 남겨져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 주변을 보면 1년에 시집 한 편, 소설책 한 권 읽지 않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 행위가 일반인들에게는 너무나 거리가 먼 얘기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디지털미디어와 영상 문화의 발달은 문학의 저변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축소시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수많은 백일장이 개최되고 있고, 백일장에 참여하여 자신의 생각과 정서를 문학 작품으로 표현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이 존재한다.
사람은 이성과 감성의 두 날개로 삶을 완성해 간다. 이성과 감성 중 어느 하나만으로 삶을 온전하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는 따뜻한 감성보다는 냉혹한 이성이 더욱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의 부족한 감성을 채워 줄 수 있는 문학은 여전히 가치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문학이 미래에도 사람들에게 중요한 의미로 남아 있기 위해서는 전문 작가의 영역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문학 작품을 창작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과정이며, 세상을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행위이다. 문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제 다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백일장은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올가을 일반인들도 참여할 수 있는 백일장이 지역 여러 곳에서 펼쳐진다. 그곳에서 가을의 향기를 맡으며 나를 돌아보는 글 한 편 써보는 것은 어떨까.
조유영 (제주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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