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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트레이드마크는 소득주도성장이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실패로 끝났다. 왜 낙제점을 받았을까. '균형'의 실패였다. 총수요를 견인할 소득주도성장과 공급부문의 효율성을 높일 혁신성장의 균형을 맞추지 못한 까닭이다. 근로자 임금을 높여 소비를 진작하겠다는 의욕만 팽배했다. 단편적 포석은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으로 이어졌다. 노동시장 유연화, 규제 개혁 등 공급부문 혁신은 뒷전이었다. 이러고서야 기업 투자-고용 증대-임금 상승의 선순환 고리가 작동될 리 없다.
경제정책에도 '균형'이 필요하거늘 하물며 수도권과 지방이야 말할 나위가 있으랴. 한데 눈에 번쩍 띄는 제안이 나왔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서울대·연세대·고려대·서강대와 20대 기업 중 몇 개의 본사나 공장을 지방으로 옮기겠다"고 운을 뗀 것이다. 그것도 윤석열 정부 임기 내에. 강력한 균형발전 정책임이 틀림없다. 관건은 실천이다.
댓글을 살펴봤다. "누구 마음대로?" "서울에 없으면 서울대가 아닌데" "서울에 남는 대학들만 살판났네" "지방에 있는 대학과 기업들부터 살려라". 부정적 비아냥이 대세였다. 실세 장관의 파격적 제안은 고맙지만 관련 부처나 대학과의 협의 없이 불쑥 던졌다는 게 문제다. '만 5세 취학'의 균형발전 버전 느낌이 물씬하다.
'SKY 대학'과 대기업 본사의 지방이전 의지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다만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파편화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부처 간 유기적 공조체제가 중요하단 의미다. 균형발전 정책을 총괄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단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윤 정부의 균형발전을 주도할 지방시대위원회는 행정권이 없다. 실질적 권한이 없으니 정책을 실행할 동력이 없을 수밖에. 그래도 6개 부처 장관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한다. 허울만 번지르르한 셈이다.
지방시대위원회가 행정권을 갖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면 'SKY 대학' 이전 같은 파격 주장을 언론에 쉽게 까진 못한다. 사전에 정치(精緻)한 논의가 있었을 테니까. 지자체와 시민단체는 부총리급 균형발전부 신설을 주장한다. 균형발전부 대안이 지방시대위에 집행권한을 주는 거다. 형해화된 지방시대위원회로는 균형발전의 획기적 시전이 불가능하다. '연방제 수준의 분권국가'를 약속했던 문재인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왜 답보 상태에 머물렀을까. 균형발전위원회와 자치분권위원회가 대통령 자문기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고작 국토의 11.8%를 점유한 수도권 위세는 여러 대목에서 노정된다. 국회 지역구 253석 중 121석이 수도권 의원이다. 비례대표를 합치면 당연히 절반을 훌쩍 넘는다. 대기업 본사나 금융기관 예금의 수도권 비중 얘기는 하도 반복해 이제 진부하다. 시대 조류를 대변하는 게 문화산업이다. 출판·영화·음악·게임 등 문화콘텐츠 매출의 89%를 수도권이 과점한다. 수도권 일극체제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1960년대 초반만 해도 서울 인구는 245만명에 불과했다. 그땐 웅도 경북이 최다 인구였다. 그런데 지금 어찌 됐나. 1960년대 6명이던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이 지난해 0.81명으로 쪼그라들었다. 마치 대구경북의 위상 추락을 웅변하는 듯하다. '3대 도시 대구'의 추억도 가물가물하다. 이게 다 수도권 일극주의의 폐해다.
윤 정부가 내건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는 참 맛깔나는 구호다. 이 슬로건이 부끄럽지 않게끔 강력한 균형발전 정책을 펼쳐 주기 바란다. 제안만 남발하지 말고 반드시 실천해 달라는 주문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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