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부터 바닷길까지, 포항 힐링로드 .12·<끝>] 해병대문화로드…100만 예비역 '팔각모 사나이들' 추억·애환 고스란히

  • 류혜숙 작가,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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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19   |  발행일 2022-09-19 제18면   |  수정 2022-09-19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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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정문인 서문 앞은 '해병의 거리'다. 이곳은 빨간 추리닝을 사고 이름을 새기기 위해 마크사를 방문하는 배 나온 아저씨들에게 추억의 장소다. 또 맛집으로 이름난 식당들도 자리를 지키고 있어 외지인의 방문은 꾸준하다.

크고 작은 재해 현장마다 어김없이 볼 수 있는 빨간 추리닝의 사나이들, 또한 빨간 명찰을 오른쪽 가슴에 달고 팔각모를 쓴, 새까만 얼굴로 각인되어 있는 군인들이 있다. 바로 해병이다. 투철한 사명감과 호국정신으로 무장한 '무적 해병'이 태어나는 곳이 바로 경북 포항이다. 대원이라면 예외 없이 포항의 해병대 교육훈련단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포항은 해병인의 영원한 고향이라 불린다.

◆해병의 거리

포항 오천읍은 해병대 1사단, 해병대 교육훈련단과 해병대 군수지원단, 해병대 항공단 등이 자리해 있는 무적 해병대의 고장이다. 복무 중인 군인과 가족을 합치면 1만명이 넘는 사람이 생활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해병대의 요람이기도 하다. 해병대 1사단은 6·25 전쟁이 끝난 1959년 3월12일, 경기도 파주군 금촌에서 포항 오천으로 주둔지를 옮기면서 포항과 인연을 맺게 됐다. 이후 베트남 파병과 포스코 및 포항 항구 등 국가의 중요한 시설을 방호하면서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포항시와 희로애락을 함께하고 있다.

해병부대는 남구 오천읍과 동해면·청림동에 걸쳐 넓게 자리한다. 부대 서편의 도로는 해병로(海兵路)다. 포항 오천을 가로질러 영일만으로 흘러드는 냉천을 따라 포항시 남구 청림동에서 오천읍 문덕리를 연결하는 도로로, 2009년 해병대 1사단 창설 50주년을 맞아 해병로로 명명됐다. 해병로는 봄마다 벚꽃과 개나리가 터널을 이루는 포항의 이름난 봄꽃 명소이기도 하다. 해병로에서 충무로를 따라 들어가면 해병대 정문인 서문이 있다. 서문 앞은 '해병의 거리'다. 예전에는 서문사거리라고 불렀고 오천의 심장이라고 했다. 각종 가게로 빼곡한 거리 곳곳에서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해병대는 상륙작전을 주 임무로 한다' '귀신 잡는 해병대 무적해병'이라는 자부심 넘치는 조형물들을 볼 수 있다.


해병대 1959년에 오천읍으로 옮겨와
60여 년간 포항과 희로애락 함께 해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 장정 입영식
부대 서문 '해병의 거리' 1만여 인파

교육훈련단 입구 조성 일월문화공원
민족정기 오롯이…장병 쉼터 역할도

해마다 해병대문화축제로 긍지 높여
실전같은 시범 해상기동훈련 선보여
다양한 병영체험 프로그램도 큰 인기



예전에는 동·서·남·북 4개 문이 있었다. 정문과 함께 남구 일월동에 있던 동문은 주말이면 외출과 외박을 나온 장병으로 가득했다. 특히 동문은 1970년 초반까지 베트남전에 참전한 청룡부대 면회소 역할을 하면서 수많은 장병의 애환을 함께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신병훈련소와 같은 외부인 왕래가 잦은 부대 없이 현역병이나 부사관·장교들만이 드나드는 전투사단만 있다 보니 부대를 둘러싸고 있는 상권 형성의 속도는 느렸다.

전환점을 맞이한 것은 1970년대 후반이다. 해병대는 1949년 창설 이후 경남 진주와 제주도에서 해군과 뒤섞여 기초 군사훈련 및 각종 특기훈련을 실시했었다. 이후 고유의 양성교육을 계승하고 최강 해병대원을 자체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1977년 1월1일 해병대 교육훈련단을 포항에 창설한 것이다. 당시 교육훈련단은 출입문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30년간 한 달에 1·2기씩 선발하는 신병의 입소식이 열리는 날이면 입영 장정과 가족 수천여 명이 서문을 드나들었다. 그때부터 서문은 '무적해병'이 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되었다.

이렇듯 외부인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서문 주변에는 자연스럽게 상권이 형성됐다. 이는 포항공항 인근에 위치한 동문이 1970년대 후반 폐쇄되면서 더욱 가속화했다. 여기에 주말과 휴일이면 현역병과 직업군인이 무리 지어 쏟아져 나오면서 인근의 각종 상가는 문전성시를 이뤘고 가게들은 밤늦도록 불야성을 이뤘다. 서문이 호황기를 이뤘던 1980∼90년대에는 평일 저녁에도 가게에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해병의 거리는 2000년대에 들어 쇠퇴기를 맞았다. 2007년 7월 교육훈련단이 정문을 개방하면서 더 이상 서문을 통해 신병이 입소하는 일이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빨간 추리닝을 사고 이름을 새기기 위해 마크사를 방문하는 배 나온 아저씨들이 '해병의 거리'를 걷는다. 맛집으로 이름난 식당들도 자리를 지키고 있어 외지인의 방문은 꾸준하다. 해병대 커트·돌격머리를 만들어주는 이용원도 많이 보인다. 해병대 동문도 2016년 다시 열렸다. 주변에 몰개월 비행기 전시장과 청포도 테마길이 있고 호미반도 해안 둘레길의 시작점이자 해병대 상륙훈련장인 청림 해변과 도구해안이 가까이 있어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해병대 서문 '해병의 거리'에서 영일만 바다로 향하는 동문까지, 해병부대를 둘러싼 길은 100만 예비역 해병의 아련한 추억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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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교육훈련단 입구 앞에 조성되어 있는 일월문화공원 전경. 일월문화공원은 연오랑 세오녀 전승의 뿌리 또는 포항 정신의 원류에 대한 또 다른 마당으로 역사 유적의 복원이자 민족정기의 회복이라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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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문화공원에는 연오랑세오녀상과 일월문화기념단·전시관 등을 비롯해 영일만 일대의 고대 제천문화를 보여주는 암각화와 고인돌·선돌 등이 모형으로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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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문화공원에는 연오랑세오녀상과 일월문화기념단·전시관 등을 비롯해 영일만 일대의 고대 제천문화를 보여주는 암각화와 고인돌·선돌 등이 모형으로 전시되어 있다.

◆해병대 교육훈련단과 일월문화공원

해병대 서문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모든 대한민국 해병이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해병대 교육훈련단(교훈단) 입구가 있다. 커다란 문에는 '해병대는 이곳에서 시작된다'라는 문구가 문보다 더 크게 적혀 있다. 이 문으로 매월 1개 기수, 1천여 명의 장정이 교훈단에 입영한다.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이면 포항 해병대 교육훈련단 인근 도로는 입대자와 가족이 타고 온 차량으로 거대한 주차장이 된다. 거의 1만명에 가까운 이들이 포항지역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는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크다.

교훈단 입구 앞에는 일월문화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문체부 신라문화바닷길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2013년에 공원 조성계획이 세워져 2022년 최종 완공됐다.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부대 안에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일월지가 있다. 일월지 부근에는 신라시대부터 일월에 제사를 드리던 천제단이 있었고 매년 9월 중양절에 해와 달에 제사를 드렸다고 하는데 천제단은 일제 강점기 때 철거됐다.

일월문화공원은 천제단이 있던 곳을 추측해 조성했다고 한다. 일월문화공원은 연오랑 세오녀 전승의 뿌리 또는 포항 정신의 원류에 대한 또 다른 마당으로 역사 유적의 복원이자 민족정기의 회복이라는 의미가 있다. 공원에는 연오랑세오녀상과 일월문화기념단·전시관 등이 있고 새로운 일월지도 조성되어 있다. 너른 부지에는 영일만 일대의 고대 제천문화를 보여주는 암각화와 고인돌·선돌 등이 모형으로 전시되어 있어 포항에 산재되어 있는 제천 문화와 유물을 한곳에서 둘러보기에 좋다. 무엇보다도 그늘막 쉼터와 정자·해병광장 등이 마련되어 있어 매달 교훈단을 찾는 수많은 사람에게 보다 편안한 공간이 되어 준다.

◆포항 해병대문화축제

100만 해병의 본고장 포항에서는 2017년부터 매년 포항 해병대문화축제를 열고 있다. 해병인의 자부심과 긍지를 집결시키고 국난극복과 안보 공감대 형성을 위한 축제로 포항에서만 유일하게 열린다. 축제는 메인행사장인 냉천수변공원에서부터 동문과 가까운 도구해안·형산강 등지에서 펼쳐지며 카 퍼레이드·헬기 레펠·고공 강하·헬기 비행 시범·블랙 이글스 에어쇼 등 축제의 장은 육해공을 아우른다.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해병 의장대와 군악대 공연·무적도 시범공연 등은 대한민국 무적해병만의 절도 있는 동작과 늠름하고 믿음직한 모습으로 관람객을 매료한다. 특히 도구해안에서 펼쳐지는 해병대 해상기동훈련은 최첨단 해상기동장비와 공중기동장비 등이 대거 투입돼 실제와 다름없는 웅장하고 용맹한 시범훈련을 선보인다. 형산강에서는 해상 퍼레이드·상륙돌격장갑차와 상륙돌격용 고무보트 탑승 체험 행사가 열린다.

축제장 주변에는 어린이를 위한 대형 에어바운스(Air-bounce)존을 비롯해 군 생활을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군복 착용체험·병영생활 체험·군 장비 체험·전투식량체험·위장크림 페이스 페인팅·부대 개방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돼 관광객에게 인기가 높다. 먹거리장터도 열린다. 포항의 대표 건어물과 해산물·농산물 등 특산품 판매장이 운영되며 소비촉진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관광객을 상대로 현장에서 포항사랑 상품권을 할인 판매하기도 한다. 포항 해병대문화축제는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다고 한다. 축제에 처음 와 본 사람은 누구나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가 왜 이제야 왔지?"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 : 포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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