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탁현민의 이유 있는 '영빈관' 침묵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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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19   |  발행일 2022-09-19 제26면   |  수정 2022-09-19 06:58
청와대 영빈관 이전 논란
전임 정부 의전비서관은
열악한 시설에 통탄했다
늦었지만 공론화 거쳐서
국격에 맞는 시설 지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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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본부장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의전비서관을 지낸 탁현민은 윤석열 정부를 겨냥해 수시로 일침을 날린다. 특히 자신의 전공 분야인 '대통령 의전'에 대해선 더욱더 날을 세운다. 윤 대통령이 새로 선보인 민방위 복 팔 부근에 '대통령' 표찰이 달린 걸 보곤 "용산의 비서관들은 대통령을 바보로 만들지 말라"고 독설을 날렸다. 국민에게 반환된 청와대 영빈관에서 화보 촬영이 있자 "국가의 품격이 떨어졌다"라고 했다. '청와대' 얘기만 나오면 사사건건 시비를 걸던 탁현민이 최근 불거진 청와대 영빈관 이전 신축 논란엔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했던 민주당 의원들이 '김건희 무속' 프레임에 집어넣어 정치적 재미를 보려고 하는데도 말을 보탤 기미조차 없다. 왜 그럴까. 뱉어놓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탁현민이 청와대를 잠시 떠나 있던 2019년 2월10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요지다. "청와대에 있을 때 가장 아쉬웠던 것 중 하나가 '영빈관'이었다. 말이 영빈관이지 실은 구민회관보다 못한 시설에 어떤 상징도 역사도 스토리텔링도 없는 공간에서 국빈만찬과 환영 공연 등 여러 국가행사를 진행한다는 것이 늘 착잡했다. 한 나라의 국격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행사가 진행되는 '공간'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연출가로서 말씀드리거니와 행사의 성패, 그 절반은 공간이 좌우한다. 고백건대, 아마도 우리나라의 영빈관이 (세계적으로) 가장 최악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런 결론을 내린 탁현민이기에 문재인 정권 시절 동료들이 일제히 영빈관 이전을 정치적 공격 포인트로 잡아 십자포화를 퍼부어도 '전문가'로서의 견해를 밝히지 못하고 침묵을 택했다. 그 사이 민주당은 대선 때 김건희 여사가 진보 성향 유튜버가 친 덫에 걸려 "(영빈관을) 옮길 거야"라고 대답한 걸 끄집어내 '무속 프레임'에 가두면서 "대통령이 아닌 배우자가 영빈관 이전을 지시했다"라고 여론전을 펼친다. 아울러 민생경제가 어려운데, 왜 878억원을 들여 새 영빈관을 짓느냐며 예산 전액 삭감을 공언했다. 이 대목은 탁현민이 위에 소개한 글에서 예언했다. "(영빈관 상태는) 절망(?)스럽게도 꽤 오랫동안 달라지기 어려울 거다. 국회에서는 영빈관 개·보수 공사의 예산을 절대 승인하지 않을 거고 여당과 정부도 그것을 요구하기 어려울 거다."

아쉬운 건 윤 대통령이 탁현민의 예언처럼 계획 철회를 즉각 지시한 점이다.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정부 예산에 편성한 건 국민에게 사과하는 게 맞다. 그렇다고 계획 자체를 백지화하는 건 별개 문제다. 아마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의 기소에 맞불을 놓는 차원에서 '김건희 특검법'을 발의한 일 등이 부담이었던 듯싶다. 하지만 늦었더라도 공론화 과정을 거친 뒤 결론을 내렸어야 했다. 내년부터 2년의 공사 기간이 끝나면 윤 대통령은 임기 절반만 사용하고 다음 정권에서 쓸 영빈관이란 점 등을 제대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절차가 없었다. 민주당의 공세가 워낙 지독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는데, 민주당 정권 출신인 탁현민의 말을 한 번 더 인용한다. "정치적 견해도, 입장도 다를 수 있고 비난도 하고 공격도 하고 다 좋지만 안 그래도 되는 것도 있다. 국격은 국가의 격이 아니라 국민의 격이다."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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