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윤석열의 '운칠기삼'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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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22   |  발행일 2022-09-22 제22면   |  수정 2022-09-22 06:38
압도적 선거운발 권좌 등극
통치는 달라…덕성·능력 필수
부족한 '비르투' 채워나가야
이념·인재 등용 경계 허물고
내치에 '담대한 구상' 펼쳐야

[박규완 칼럼] 윤석열의 운칠기삼
논설위원

'운칠기삼(運七技三)'은 청나라 작가 포송령이 저술한 '요재지이'란 단편소설집에서 유래한 사자성어다. 백발이 성성하도록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선비가 탄식한다. "변변치 못한 자들도 급제해 입신양명하거늘 나는 왜 이리도 운이 없는가." 급기야 선비는 옥황상제에게 이유를 따져 물었다. 옥황상제는 정의의 신과 운명의 신에게 술 내기를 시킨다. 정의의 신이 석 잔, 운명의 신이 일곱 잔을 마시자 옥황상제는 세상사의 7푼이 운명의 장난에 따라 행해지되 3푼은 이치에 따라 행해짐을 선비에게 일러준다. 과연 세상은 '운칠기삼'의 원칙이 작동할까. 일본 뇌과학자 나카노 노부코는 '운칠기삼'에 동의한다. 그는 '뛰는 놈 나는 놈 위에 운 좋은 놈 있다'는 저서에서 적자생존의 법칙이 유효한 것처럼 운 있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주장을 편다.

정치인에겐 선거운이 절대적이다. 정치인의 명운이 오롯이 선거에 함몰되는 까닭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선거 운발은 '운칠기삼'의 압권이라 할 만하다. 대권 쟁취 과정은 각본 없는 드라마였다. 박빙 판세의 긴장이 있었고 예고 없는 반전이 있었으나 승리의 여신은 윤석열 후보 편이었다. 김건희의 허위 이력 파문이 윤 후보 지지율을 까먹을 즈음 김혜경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이 불거지는 식이었다. 정치 입문 1년 만에 권좌에 등극했으니 거의 전인미답의 경지다. 이게 대운 없이 가능할까.

하지만 통치는 운발에만 의존할 수 없다. 비르투가 필요하다. 비르투는 마키아벨리의 용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과 또 다른 명저 '로마사 논고'에서 포르투나와 비르투를 조명했다. 이탈리아어 비르투(virtu·덕)의 어원은 vir(남성)이다. 강한 남성의 힘 virtu는 덕(德)의 속성이다. 포르투나(fortuna)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행운의 여신으로 어원은 fortune(운)이다. 마키아벨리는 포르투나 즉 운을 무시할 수 없다면서도 군주는 강력한 비르투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덕성·능력·결단력·용맹에 더해 심지어 사악함까지 비르투의 범주로 봤다.

윤 대통령은 포르투나에 비해 비르투가 약하다. 비르투의 핵심이랄 수 있는 덕과 능력이 아쉽다. 지인을 지나치게 편애하고 포용력이 부족하다. 검찰 출신을 중용했으며 '사적 채용' 논란을 야기했고 '내부 총질' 문자로 윤핵관·이준석 파동을 증폭했다. 극우 유튜버를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하고 추석 선물을 보내 '통합 대통령' 이미지를 구겼다.

영빈관 신축 해프닝은 코미디에 가깝다. 하루 만에 뒤집으며 조령모개의 진수를 시전했다. 결정 과정도 묘연하다. 총리도 대통령실 수석들도 몰랐다니 말이다. 영국으로 날아간 윤 대통령은 조문 스케줄이 꼬여 야당의 입길에 올랐다. 대통령실의 사전 조율이 미숙했다는 방증이다. 한때 윤석열의 시그니처였던 '공정과 상식'은 실종된 지 오래다. 복합 경제위기를 무탈하게 극복해 낼지도 미지수다. 정치는 '강 대 강' 대치 국면이다. 문재인 정부와 이재명을 겨냥한 검경과 감사원의 칼날이 표독하다. 민주당은 '김건희 특검' 맞불로 반전을 노린다. 민생이 스며들 공간은 좁디좁다. 윤 대통령은 취임 때부터 줄곧 '자유'의 오지랖을 강조했다. 하지만 통합·협치·관용도 자유 못잖은 통치 언어다.

'운칠기삼'이 선거엔 타당할 수 있겠다. 5년간 이어지는 국정 운영은 다르다. 운이 작동할 여지가 적으니 '운삼기칠'이 적절하다. 그러자면 부족한 비르투를 채워야 한다. 통치자로서의 도량을 넓히고 이념과 인재 등용의 경계를 허물며 사정정국을 지양해야 한다. 내치에도 '담대한 구상'이 필요하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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