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에게 듣는다] 뇌전증…평소 양손 움찔하며 떨리면 '뇌전증' 전조 의심

  • 노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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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27  |  수정 2022-09-27 07:19  |  발행일 2022-09-27 제17면
뇌신경 세포 일부가 과도한 전류로 반복적인 발작

예전 '간질'로 불려…韓 1천명당 7.6명꼴 발병 추정

유전·뇌졸중 등 원인 다양…60%는 약물로 조절 가능

[전문의에게 듣는다] 뇌전증…평소 양손 움찔하며 떨리면 뇌전증 전조 의심

대학생 김민수(가명·20)씨는 학교에서 강의를 듣던 중 쓰러져 대구가톨릭대병원 응급실에 실려 왔다. 응급실에 함께 온 김씨의 친구는 "민수가 쓰러질 때 입에 거품을 문 채 팔다리에 힘을 주고 떨면서 경련을 했다"고 의료진에게 설명했다. 다행히 응급실 도착 후 의식은 모두 회복됐다. 하지만 혀를 깨물어서 입술에 피도 묻어 있는 상태였다.

의료진에 따르면, 김씨는 강의실에서 쓰러지기 전날 오전 4시까지 컴퓨터 게임을 하고 밤을 새우느라 잠은 3시간밖에 못 잤다. 환자와 자세하게 이야기해 보니 고등학교 2학년 때도 시험기간 중 경련을 하며 쓰러진 적이 있었고, 가까운 병원에서 뇌 컴퓨터 단층촬영(CT)과 간단한 혈액검사를 했지만, 이상이 없었다고 김씨는 전했다. 김씨는 평소에도 가끔 아침마다 양손이 움찔거리며 떨리는 증상이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나쳤다. 몇 시간 후 도착한 김씨의 부모와도 이야기를 나눴지만, 예전에 머리를 다친 적은 물론 어릴 때부터 현재까지 특별히 많이 아팠던 적도 없었다고 의료진에게 설명했다.

병원 측은 김씨의 병력으로 뇌전증을 강력하게 의심해 뇌 자기공명영상검사(MRI)를 시행했지만,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하지만 뇌파검사에서는 이상소견으로 뇌전증 파형이 관찰됐고, 진단을 뒷받침하는 소견이었다. 이후 병원 측은 민수씨에게 항경련제를 복용하도록 권유했고, 민수씨도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유지한 결과 치료 1년째 경련 재발 없이 안정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뇌전증이란

[전문의에게 듣는다] 뇌전증…평소 양손 움찔하며 떨리면 뇌전증 전조 의심
대구가톨릭대병원 신경과 박정아 교수

우리 몸의 신경세포는 전류의 흐름으로 신호를 전달하는데 뇌전증 발작은 뇌신경 세포의 일부가 갑자기 비정상적이고 과도한 전류를 발생시켜 일어나는 현상이다. '뇌전증'이란 이러한 뇌전증 발작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질환을 의미한다. 예전에는 뇌전증 대신 '간질'이라는 용어도 사용했지만, 그 용어가 주는 사회적 편견을 줄이기 위해 뇌전증이라는 용어로 바꿔 사용하고 있다.

2020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완치된 환자를 포함한다면 1천명당 약 7.6명 정도가 뇌전증을 앓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별에는 큰 차이가 없고, 다만 발생 연령은 소아기(0~9세)와 노년기(60세 이상)에서 많이 확인되고 있다. 외국의 보고에 따르면 뇌전증의 유병률은 1천명당 4~1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매년 10만명당 20~70명이 새롭게 발생하는 것으로 전해져 있다.

이런 뇌전증은 뇌를 침범하는 모든 질환에서 나타날 수 있다. 연령에 따라 그 원인이 다를 수가 있는데 가능하다면 그 원인을 찾아서 교정해 줘야 한다. 뇌전증의 원인은 △유전 △분만 중 뇌 손상 △뇌 발달 과정 중의 이상 △뇌염이나 뇌수막염 △뇌종양 △사고 등으로 인한 뇌 외상 △뇌졸중 등이다. 하지만 원인 질환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이러한 경우 뇌에서 비정상적인 흥분상태를 유발하는 신경세포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위치나 분포, 원인을 알기 어려운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뇌전증 증상과 진단은

뇌전증 발작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그중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형태가 '전신 발작'이다. 환자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의식이 없고 양팔과 다리에 뻣뻣하게 힘을 주고 떨기도 한다. 또 숨을 쉬지 못해 얼굴이 창백해지고 혀를 깨물어 입에서 피가 나기도 한다. 심한 경우 대·소변실금이 발생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뇌전증 발작은 수 분 내에 종료되고, 이후 호흡이 회복되고 의식이 깨어난다. 경우에 따라서는 발작이 끝난 뒤 수십 분 정도 혼돈을 보이다가 원래 의식 상태로 회복되는 경우도 있다.

부분 발작의 경우 팔 또는 다리가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움찔거리기도 한다. 실제로는 낯선 상황이 갑자기 친숙하게 느껴지는 기시감(데자뷔)과 같은 정신증상의 형태로도 나타날 수가 있다.

대구가톨릭대병원 박정아 교수(신경과)는 "부분발작, 기시감과 같은 정신증상 이외에도 발생하는 뇌의 부위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발작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뇌전증의 진단에는 병력 청취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환자가 의식을 잃었을 경우 목격자의 진술 또는 증상을 촬영한 동영상 등이 진단에 매우 큰 도움이 된다. 확실히 목격된 뇌전증 발작이 반복적으로 (24시간 이상의 간격을 두고 2회 이상) 확인된다면, 다른 검사에서 이상이 없어도 뇌전증으로 진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뇌전증 발작이 한 번만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뇌 영상검사에서 뇌전증과 관련된 이상 소견이 있거나, 뇌파 검사에서 뇌전증과 관련된 파형이 관찰된다면 뇌전증으로 진단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비디오-뇌파검사를 24시간 이상 시행하기도 한다. 이 검사는 환자의 발작을 비디오로 녹화하면서 동시에 뇌파를 기록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뇌전증의 치료

뇌전증 치료에서 가장 우선적이고 중요한 방법은 '약물치료'다. 적절한 약물치료를 받는 뇌전증 환자의 약 60% 이상은 발작 없이 생활할 수 있고, 약 20% 정도는 수개월에 한 번 정도의 드문 발작을 보인다. 그런 만큼 뇌전증이 불치병이라는 말은 큰 오해라고 보면 된다. 항경련제는 최소 2년 이상 복용하는 것을 권장한다. 항경련제는 발작의 빈도나 강도를 감소시키는 만큼 예측할 수 없는 발작으로 인한 위험한 사태를 예방하고 환자를 보호하게 된다. 또 다양한 약제가 시판되고 있어 환자 개인의 상황이나 기저 질환을 고려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약제를 선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일부 뇌전증 환자는 여러 가지 약제 사용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잘 조절되지 않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는 난치성 뇌전증으로 증상 및 검사 결과를 진행, 필요한 경우 뇌전증 수술, 미주신경 자극술 등을 고려하기도 한다고 전문의들은 전했다.

뇌전증 치료에 있어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생활습관 관리다. 우선,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서 수면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또 항히스타민제 등 일부 약물과 알코올의 경우 뇌전증 발작을 유발할 수 있는 만큼 주의해야 한다.

박 교수는 "병원의 치료를 적절히 받고, 환자 개인의 생활습관을 잘 유지한다면 뇌전증 환자도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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