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 마음 훔쳐간 변호사들…법정드라마 전성시대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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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06 07:05  |  수정 2022-10-06 07:38  |  발행일 2022-10-06 제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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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칼 없는 말의 전쟁, 안방극장이 말로 벌이는 액션 쾌감을 다룬 법정 드라마로 넘쳐난다. 단돈 1천원만 받고 사건을 수임하는 괴짜 변호사부터 성공을 위해 무엇이든 물어뜯는 독종 변호사까지. 독특한 개성을 지닌 법조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시청자를 찾고 있다. 법정에서의 시시비비를 소재로 다룬 드라마가 그동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후광 효과 때문인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야심 찬 시도가 공교롭게도 '소재 겹치기' 상황으로 나타나고 있는 요즘이다.

장르물로서 전통 오래돼 대중적 인기
폭넓은 서브장르 변주…소재의 보고
정의 실현 과정서 통쾌한 카타르시스
허를 찌르는 재미·매 순간 반전의 연속
외면해 온 사회 문제 함께 고민하기도


◆충격적 진실과 반전까지 다양한 장르적 재미를 담다

장르물로서 법정 드라마의 전통은 오래되었고 그만큼 폭넓고 대중적이다. 자유롭게 서브 장르로 변주돼 때로는 사회성을 담보한 인간드라마로, 때로는 코믹한 시트콤으로, 때론 냉철한 스릴러로 대중과의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항상 새로운 소재와 이야기를 발굴해야 하는 제작진의 입장에선 소재의 보고(寶庫)와도 같다. 이분법적인 구도가 명확하기에 장르적 재미를 높일 수 있고, 법을 통해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법정물의 재미는 법의 가혹함에서부터 출발한다. 죄를 지었는지가 아니라 죄를 입증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고, 죄가 없는지가 아니라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대표적으로 SBS '천원짜리 변호사'의 천지훈은 소매치기범으로 몰린 동종전과 4범 의뢰인의 변론을 통해 '합리적 의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명언처럼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이 고통받는 것보다 100명의 죄인이 도망가는 것이 낫다"는 합리적 의심을 설파한다.

'천원짜리 변호사'는 대부업체의 무리한 이자 요구에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남성의 사연, 아파트 경비원을 향한 주민 갑질 등 복잡하지 않지만 현실에 일어날 법한 사건들을 에피소드로 차용해 이해의 폭을 넓혔다. 그 과정에서 소매치기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피고인에게 소매치기를 시키는 역발상, 갑질 주민의 차량 범퍼를 박살 냄으로써 원래 있던 작은 흠집을 가려버리는 소탐대실 전략 등 허를 찌르는 독특한 행보로 재미와 통쾌함을 안긴다.

동명의 에세이를 원작으로 한 디즈니+의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는 국선전담변호사의 삶을 따뜻하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실형을 받은 전력이 있으면 단순 절도도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 이른바 '장발장법' 위헌 결정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원작자의 이야기가 작품 속 에피소드로 그려지며 공감대를 형성한다. 피임약 부작용 사건, 미혼모 문제 등 우리가 외면해 온 사회적 문제를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도 마련했다.

이외에도 JTBC '디 엠파이어: 법의 제국'은 법조계 카르텔을, tvN '블라인드'는 국민참여 재판을 다뤘고, 5일 전파를 탄 KBS '진검승부'는 부와 권력이 만든 성역을 시원하게 깨부수는 꼴통 검사를 전면에 내세웠다.

◆시청자 마음을 훔친 빛나는 케미스트리

법정물은 스토리텔러의 화법을 통해 주인공들이 졌다고 인정하도록 만들어야 반전의 묘미도 크다. 이 때문에 마지막 판결이 나기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증인이 등장할 때마다, 검사와 변호사가 번갈아 등장할 때마다 그리고 최후변론이 이뤄질 때까지 매 순간이 반전의 연속이다. 극 중 캐릭터와 이를 연기하는 배우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다.

'천원짜리 변호사' 는 천지훈을 연기한 배우 남궁민의 존재감에 많은 것을 기댄다. 그를 통해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의뢰인을 구원하는 든든한 히어로의 모습은 물론, 짜장면 그릇에 코를 박고 폭풍 흡입하는 친근감으로 웃음을 자아내고, 빈틈없는 논리력으로 불리한 재판을 뒤엎는 '멋짐'을 폭발시킨다. 무엇보다 나사 풀린 괴짜로 돌아가는 남궁민의 원맨쇼는 타이틀 롤이 가져야 할 흡입력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다. 여기에 김지은(백마리 역), 박진우(사무장 역) 등과의 차진 티키타카도 캐릭터 플레이에 감칠맛을 더했다.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의 독종 변호사 노착희(정려원 분)와 별종 변호사 좌시백(이규형 분)의 티키타카도 이에 못지않다. 늘 서로를 잡아먹을 듯한 두 사람이지만 각각의 아이디어와 실력이 더해져 승소한 사건을 계기로 의기투합해 흥미를 배가한다.

청춘들의 매력적인 티키타카가 경쾌함을 전하는 KBS '법대로 사랑하라'는 로맨틱 코미디의 문법을 따랐다. 검사 출신 건물주 김정호(이승기 분)와 변호사 세입자 김유리(이세영 분)를 앞세워 알기 쉬운 법 이야기와 함께 연인으로 발전하는 두 사람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두 배우는 자칫 과해 보일 수 있는 캐릭터의 매력을 살리고 뻔한 전개에도 몰입감을 높인다는 평가다.

다만 '소재 겹치기'에 대한 지적이 따른다. 비슷한 소재가 반복돼 시청자의 피로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다. 제작사와 방송사도 이런 상황까지 예견하지 못했기에 난색을 보인다.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를 연출한 강민구 PD는 "당연히 부담감은 있지만 작품마다 분명 차별성이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그의 말처럼 기획 면에서 신선했고, 연출의 면면에서 가능성을 남긴 이들 작품은 구태의연함을 벗어난 장르물로서의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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