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소나무 무덤

  • 백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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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27  |  수정 2022-10-27 06:53  |  발행일 2022-10-27 제23면

얼마 전 가끔 오르는 뒷산 곳곳에서 전기톱질 소리가 들린다. 며칠 뒤 산에 오르니 눈에 자주 띄던 아름드리 소나무 몇 그루가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등산로 아래에는 초록색 비닐이 덮인 무더기가 곳곳에서 눈에 띈다. 다름 아닌 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 무덤이었다.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리는 나무는 소나무, 잣나무, 곰솔(해송), 섬잣나무 등 4개 수종이다.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나무는 100% 말라 죽는다. 강한 전파력 때문에 무조건 벌채를 한다. 벌채한 소나무는 1~2m 크기로 잘라 약품을 뿌린 뒤 비닐로 덮어 훈증처리를 한다. 소나무 재선충 1쌍은 불과 며칠 사이에 20만 마리로 불어날 정도로 전염성이 매우 높다. 높은 고사율로 ‘소나무 에이즈’로도 불린다. 공생 관계에 있는 매개충 솔수염·북방수염하늘소에 기생하다가 소나무에 침입하는 재선충은 0.6~1㎜ 크기로 실(絲)처럼 생겼다. 소나무와 잣나무에서 단기간에 급속히 증식하면서 수액 이동 통로를 막아 나무를 말라 죽게 한다. 아직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아 나무를 살릴 방법은 전염 예방뿐이다.

소나무재선충병은 초기에 확산을 막지 못하면 걷잡을 수가 없게 된다. 1905년 재선충병이 처음 발견된 일본의 경우 많은 소나무를 잃고 사실상 예방을 포기한 상태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현재까지 고사한 소나무만 1천만 그루가 넘는다. 소나무를 뜻하는 송(松)은 '불로장수' '영원불멸' '자비' '절개'를 표현한다. 등산길에 즐비한 소나무 무덤을 볼 때마다 가슴 시리다.

백종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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