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측근 그룹이자 국가정보원 '2인자'로 꼽혔던 조상준 기획조정실장의 사퇴 배경에 의문의 꼬리가 이어지고 있다. 일반적 사퇴와 달리 지난 25일 직속상관인 김규현 국정원장을 건너뛰고 용산 대통령실에 직접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27일 정치권을 중심으로 조 전 실장이 임명 4개월 만에 사퇴한 배경에 원장과의 인사 갈등설과 도덕적 비위설·건강악화설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인사 갈등설은 윤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조 전 실장이 김 원장과 2급 간부 인사를 놓고 갈등을 빚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알력이 장기화하자 윤 대통령이 조 전 실장의 퇴진을 결정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정원을 지낸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CBS 라디오에서 "국정원 2, 3급 인사를 해야 하는데, 조 전 실장이 자신의 안을 청와대(대통령실)로 올렸다고 한다. 그런데 해외에 나갔다 온 김규현 국정원장이 보니 자기 생각대로 안 돼서 다시 올린 것"이라며 "대통령실에서 고심하다가 그래도 (국정원장의 손을 들어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원장은 정보위 국정감사에서 "인사 갈등은 없다"고 일축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조 전 실장 면직 이유를 묻는 취재진 요청에 "공적인 것이라면 궁금해하시는 분들한테 말씀을 드릴 텐데 개인적인 일"이라며 "일신상의 이유라서 공개하기가 조금 그렇다. 중요한 직책이기 때문에 계속 과중한 업무를 감당해나가는 것이 맞지 않겠다 해서 본인의 사의를 수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정원장과 대통령의 설명에도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사퇴의 직접적인 사유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사 갈등이 간단치 않았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이른바 '원장 패싱 사의 표명' 때문이다. 대통령실과 국회 정보위 브리핑을 종합하면 조 전 실장은 국정감사를 하루 앞둔 지난 25일 대통령실의 유관 비서관에게 사의를 표했고 이를 보고받은 윤 대통령은 사의를 수용·재가했다. 김 원장은 같은 날 오후 8∼9시쯤 대통령실 담당 비서관으로부터 유선 통보를 받기 전까지 조 전 실장의 사의 표명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국정원과 같은 조직에서 기조실장이 직속 상관인 원장을 건너뛰고 대통령실에 사의를 밝힌다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다.
조 전 실장이 건강 문제를 내세워 전격 사의를 밝힌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국정원도 27일 보도자료를 통해 "조상준 전 기조실장 사직 배경과 관련해 일부 언론에서 내부 인사 갈등설 등 각종 소문을 보도한 데 대해 전혀 사실무근임을 밝힌다"며"본인의 건강 문제 등 일신상의 사유로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법적·도덕적 잣대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개인 비위나 음주 운전 등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는 추측도 있다. 김 원장은 전날 국감에서 이러한 개인 비위나 음주 운전 등 의혹에 대해 "알 수 없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호기자 tiger35@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