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못다핀 꽃 한 송이

  • 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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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1-02  |  수정 2022-11-02 06:44  |  발행일 2022-11-02 제26면
기성세대 지키지 못한 약속

반성보단 변명, 책임 전가만

확실한 대책 없인 참사 반복

희생자, 내 가족이란 생각해야

청춘, 의미 없는 희생 막아야

[동대구로에서] 못다핀 꽃 한 송이
임호 서울 정치부장

지난달 29일 이태원 압사 참사로 아까운 청춘들이 꽃 한번 제대로 피워보지 못하고 졌다. 필자는 그날 이후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다. 쉽게 잠들지 못하고, 평소에도 무기력하다. 그리고 이유 없이 슬퍼진다. 1일 국회 정문 앞에 마련된 이태원 압사 참사 분향소에 국화 한 송이를 올리며 가슴이 미어졌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사태 당시 느꼈던 감정과 비슷하다. 희생자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느꼈을 고통을 생각하면 지금도 슬픔을 거둘 길 없다. 자녀를 떠나보낸 부모의 심정을 생각하니, 더욱 고통스러워졌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세월호 참사 당시 우리 기성세대(旣成世代)가 두 번 다시 이런 참사를 만들지 않겠다고 청춘들에게 몇 번이고 약속했건만 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청춘의 꽃봉오리가 사라져야 잘못을 깨닫게 될까.

되짚어 보면 기성세대는 청춘에게 참 많은 잘못을 했다. 내 집 마련의 꿈도 꾸지 못하게 '영끌족'을 만들었고, 이보다 형편이 어려운 청춘은 결혼 자체를 포기하고 있다. 더 나쁜 상황에 놓인 청춘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지금도 방황하고 있다. 기성세대는 지금까지 무얼 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참사의 희생자 대부분은 MZ세대이다. 세월호 희생자 세대가 이태원 압사 참사와 같은 또래라는 점만 보더라도 기성세대는 그들에게 두 번이나 큰 상처를 준 셈이다. 그나마 기성세대는 모든 것이 풍족했던 80·90년대를 경험했다. 그리고 아날로그라는 추억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청춘은 IMF의 참혹함을 보며 자랐고, 미국발 금융위기의 불안함에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감에 떨어야 했다. 그들이 성인이 될 즈음에는 코로나 팬데믹의 우울함만 경험했다. 중간중간 또래 친구들을 잃는 대형 참사라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이런 청춘에게 기성세대는 개천에서 용이 될 수 없는 사회를 물려주고 있다. 사실상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로 살 것을 강요하고 있다.

현재 기성세대는 이번 참사에 대한 뼈저린 반성과 두 번 다시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정비하기보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할 것인가에만 골몰하고 있다. 또 피 끓는 청춘이 이태원으로 몰려나온 것이 잘못이라는 듯 "어쩔 수 없는 참사"라는 어이없는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사회를 이끌어 가는 나이 든 세대'라는 뜻처럼 우리 기성세대는 국가를 안전하게 끌어가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정치권도 마찬가지이다. 거대양당이 단 한순간이라도 자당의 이익에 골몰하지 않고, 국가 발전과 국민 안전에만 집중했다면 이 같은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정치인들은 국민을 하나로 결집하기보단 자신들의 유불리에 따라 국민을 극단으로 분열시키고 있다.

지금처럼 반성 없는 변명, 마녀사냥식 책임 전가가 계속된다면 멀지 않은 시기에 제2의 이태원 압사 참사, 제2의 세월호 참사는 또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성세대는 차디찬 바다에 빠진 세월호의 어린 목숨도, 이태원의 피 끓는 청춘도 구하지 못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어이없이 희생된 청춘들이 나 자신, 내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철저한 원인 규명과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임호 서울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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