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달성군 가창면 최정산 억새군락지…억새밭 거닐며 '몸쉼'…목장터 카페서 '맘쉼'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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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02 07:50  |  수정 2022-12-02 07:59  |  발행일 2022-12-02 제15면
정상 고위평탄면 화산 분화구 추정
군 부대 철수 후 지난해 새 길 완공
봄 진달래·여름 운무·겨울 설경 장관
목장터엔 베이커리 카페도 들어서
달성군 최정산 숲길 7개 구간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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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산 정상부는 고위평탄면이 비교적 넓게 발달해 있는데 원래는 화산의 분화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로 그 평탄한 분화구의 땅에 억새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산 사면을 채찍질하는 싸늘한 바람을 뚫고 숲으로 들어서자 바람은 감쪽같이 사라진다. 지난밤부터 금일 오전을 가득 채워 지난하게도 내렸던 비는 잎끝이며 작은 열매들 끝에 매달려 가소롭게도 중력과 싸우고 있었고 조붓한 길에 깔린 매트와 나뭇잎들은 물기를 머금어 질펀했다. 길가의 숲은 침엽수와 낙엽수가 적당히 뒤섞여 고만고만한 높이로 자라나 있는데 그늘을 싫어하는 물오리나무만큼은 성큼 솟구쳐 그 앙증맞은 열매를 하늘 멀리 던져 놓았다. 그러자 먼 하늘이 성큼 다가오며 산정의 오목한 대지에 내려앉았다. 그 땅에는 억새가 가득했고 하늘의 체중에 눌려 폭삭 엎디어 있었다. 너무 넓지 않아 편안했고 너무 좁지 않아 자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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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이곳에는 군부대 시설이 있었다. 부대가 철수한 뒤에는 목장이 들어섰고 지금은 베이커리 카페가 자리한다. 낡고 허물어진 건물에서 군부대 막사가 떠오른다.

◆최정산 억새군락지

최정산(最頂山)은 비슬산 주 봉우리의 동쪽 능선이 북쪽으로 이어져 솟은 산이다. 수성구나 동구, 또는 앞산 주 능선에서 남쪽으로 멀리 보이는 정상에 철탑 2개가 서 있는 바로 그 산이다. 높이는 905m로 비슬산과 닮아 형제산이라 불리며 백악기 때 화산활동이 활발했던 곳이라 한다. 정상부는 고위평탄면이 비교적 넓게 발달해 있는데 원래 화산의 분화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로 그 평탄한 분화구의 땅에 억새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예전에는 대한민국 육군 미사일 부대와 미 공군 우주사령부 소속의 위성 추적소 군부대가 주둔해 있었다. 미국은 1970년대부터 자국이 쏘아 올린 정찰 위성과 교신할 수 있는 군사통신시설을 한국의 산 정상 곳곳에 설치했다. 이후 통신기술이 발달하게 되면서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무인 시설로 전환되거나 폐쇄되었는데 최정산에 있던 부대 역시 1993년 즈음 철수했다.

가창면 주리의 먹거리 촌을 지나 산으로 오른다. 길은 매끈하고 넉넉하다. 오래전 이 길은 좁고 괴괴했다. 군부대가 철수하고도 오래 그랬다. 도로는 2019년에 새로 닦기 시작해서 2021년에 완성했다. 보기보다 가파르게 치받아 오른다. 한참을 올라 억새밭으로 가는 입구에 선다. '최정산 누리길'이라 적힌 무지개 사주문이 길가에 서 있다. 숲으로 들어서면 길은 살짝 내리막이어서 분화구 속으로 간다는 상상을 하게 된다. 길을 따라 이어지는 철조망 담장이 나무들 사이로 슬쩍슬쩍 보인다. 억새밭이 가까워지면 MTB(산악자전거) 전용 길이 나타난다. 억새군락지와 낙엽송 숲을 구불구불 오르내리는 1㎞ 정도의 길로 점프대와 데크 등이 설치되어 있다는 안내문이 있다.

새소리가 끊임없다. 포르르 날아올랐다가 포르르 숨는다. 억새밭은 길 가운데서 빙그르르 돌면 한눈에 모두 들어올 정도의 규모로 바람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안온하다. 이곳에서 대구미술광장으로 갈 수 있고, 헐티재로 갈 수도 있고, 또 청산 지나 팔조령으로도 갈 수 있다. 통점령이라 부르는 고개가 있다. 가창면 주리에서 청도 각북의 지슬리 통점마을로 가는 고개를 말하는데 청도에서 대구로 넘어가는 고개 중 하나다. 지슬재 혹은 청산재라고도 불린다. 최정산 정산에서 통점령 사이 해발 고도 700~800m 지역에 폭 300m, 길이 2㎞에 이르는 완만한 평탄면이 발달해 있는데 봄에는 연분홍빛 진달래가 피어나고, 여름에는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운무에 젖고, 가을이면 어른 키보다 높게 자라는 억새에 뒤덮이며, 겨울에는 광활한 설경으로 빛난다.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이 안온한 '최정산 억새 군락지'는 그 너른 평탄지형의 일부분이다. 억새밭에서 팔조령 방향 청산 가는 길 곳곳에서 억새 군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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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산 누리길'이라 적힌 무지개 사주문을 지나 숲길을 조금 가면 억새 군락지에 닿는다. 누리길 7구간 중 3, 4, 5구간이 이곳을 지난다.

◆목장 지나 정상으로

억새밭 북쪽에는 목장이 있다. 부대가 철수한 뒤 말을 기르는 포니목장이 들어섰고, 그 목장이 떠나자 베이커리 카페 '대새목장'이 들어섰다. '대새'는 '대구의 새로운 목장'이라는 의미라 한다. 대새목장은 말 대신 커피와 빵의 향기 그리고 사람들의 느긋한 걸음과 쉼을 방목하는 곳이다. 커피를 기다리며 옴팍한 목장 터를 내려다본다. 말들은 억새를 뜯어 먹으며 살찌웠을 테지. 저 연못은 언제 만들어진 것일까. 말들이 목을 축이던 곳일까. 아니면 자연이 만든 고산 습지인가. 연못 너머 둔덕진 곳에 옛 미군 위성 추적소 시설물이 남아 있다.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3개의 돔형 지붕이 별 보기 좋게 생겼다.

최정산에 우리나라 육군이 머물던 시절에 이 목장지에는 행정 시설과 식당이 있었다고 한다. 정상의 작전지역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은 식사 때가 되면 이곳까지 구보로 내려와 식사를 하고, 군가를 부르며 다시 작전지역으로 걸어 올라갔다고 한다. 대새목장 입구에 있는 낡고 허물어진 건물에서 군부대 막사가 떠오른다. 이제는 군인들의 노랫소리 대신 피아노 소리가 멀리 퍼진다.

도로는 정상까지 매끈하게 이어진다. 목장 위로 넓게 펼쳐져 있는 억새밭을 스쳐 지난다. 부쩍 급해진 오르막 길가에 '사직단(社稷壇)'이라 새겨진 석비가 서 있다. 2006년에 가창 면장이 세웠다고 한다. 사직은 토지를 관장하는 사신(社神)과 곡식을 주관하는 직신(稷神)을 가리킨다. 두 신에게 제사 지내는 단이 사직단이다. 별일이다 싶다가도 곡진하다 싶기도 하다. 이곳에서 새해 일출을 맞으며 소망을 빈다고 한다. 조금 더 오르면 정상이다. 도로 끝에 도로 확장 준공 표지석이 있다. 정상부에는 KT 및 대구광역시 소방본부의 중계소와 공군부대의 야외훈련장 등이 들어서 있어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KT 중계소와 훈련장 사이에 헬기장이 있는데 이곳이 일종의 정상이다. 저 아래로 도시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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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새목장은 말 대신 커피와 빵의 향기, 그리고 사람들의 느긋한 걸음과 쉼을 방목하는 곳이다. 연못 너머 둔덕진 곳에 옛 미군 위성 추적소 시설물이 남아 있다.

달성군은 이 도로를 닦으면서 모두 7구간의 '최정산 숲길(누리길)'을 만들었다. 1구간은 헬기장에서 가창 오리의 운흥사(3.7㎞), 2구간은 헬기장에서 가창 용계리의 광덕사(5.7㎞)를 잇는다. 3구간은 목장에서 억새밭 지나 대구미술광장(5.6㎞), 4구간은 목장에서 억새밭 거쳐 헐티재(7.0㎞), 5구간은 목장에서 억새밭을 가로질러 팔조령(12.6㎞)으로 향한다. 6구간은 우록경로당에서 녹동서원(5.1㎞), 7구간은 녹동서원에서 바람재(1.8㎞)로 이어진다. 이 외에도 비슬산 주변에 만들어진 '비슬산 둘레길', 대구시 경계를 따라가는 '대구둘레길', 9개의 봉우리를 종주하는 '9산 종주길' 등이 최정산 자락을 지난다. 헬기장에 차 한 대가 서 있다. 그는 이 많은 길 중 어느 길을 걷고 있을까. 이곳에서 보는 세상이 참으로 가없어서 조금 고통스러웠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대구 파동에서 청도 방향으로 30번 국도를 타고 가다 최정산 이정표를 따라 오르면 된다. 주리 먹거리 촌을 거쳐 가도 된다. 한참 오르다 보면 오른쪽에 화장실과 정자쉼터가 있는데 그 맞은편에 최정산 누리길 입구가 있다. 숲길로 조금만 가면 억새 군락지가 나타난다. 도로를 따라 조금 더 오르면 대새목장이 위치하고 길 끝까지 가면 헬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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