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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사설 카메라박물관인 한국카메라박물관 김종세 관장이 출사를 나가기 전에 포즈를 취했다. 〈한국카메라박물관 제공〉 |
"눈을 감으면 어린 시절 고향 집이 선명하게 떠올라요. 안동시 안흥동 신시장 부근의 판잣집이었는데, 걸어서 철길 하나를 건너면 바로 낙동강이었지요. 친구들과 사계절 내내 낙동강을 놀이터 삼아 지냈어요. 여름에는 작살로 꺽지·메기·쏘가리를 잡고, 겨울에는 강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온종일 놀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 바라본 낙동강의 일몰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제 인생의 가장 행복한 날이었지요."
열정과 집념으로 일군
국내 최대 사설 카메라박물관
지하1층~지상3층 연면적 843㎡
1840~1930년대 목재카메라부터
초소형 스파이·폴딩 카메라 등
진귀하고 특별한 2만5천점 소장
"라이카 한 번에 볼 수 있는 곳은
전 세계서 우리 박물관이 유일"
기로에 선 카메라박물관
개발에 밀려 운영 중단 위기
박물관 부지·건물 지구계획 편입
행정訴 등 노력에도 존치 역부족
"후손들에게 뭔가 남겨주고 싶어
매년 1억 넘는 사비로 운영 고집
부수긴 쉬워도 다시 짓긴 어려워
개발계획구역 수정 고려해 주길"
◆낙동강변서 보낸 유년
김종세(71) 한국카메라박물관장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고향의 풍경을 떠올렸다. 안동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운 형편으로 그리 순탄치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은 고교에 진학했지만, 그는 곧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하루 세끼 밥 먹고 살아가는 것이 버거운 날들이었다. 형수에게 신세를 지기 미안해 일찌감치 결혼한 후에는 딸린 가족들을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일했다.
김 관장은 "안동 문화극장 선전실에서 극장 포스터 그리는 일을 했는데, 그때 돈으로 3천원을 받았어요. 다른 일을 하면 조금 더 많이 받을 수 있었지만 제대로 일을 배우자는 생각에 돈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죠"라고 말했다. 타고난 손재주와 부지런함으로 일은 순탄하게 풀렸다. 일머리가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일감도 점점 늘어났다. 그는 이후 광고기획·제작·판촉 등 광고사업 전 분야로 사업을 넓혔다.
김 관장은 "상업미술사를 줄인 '상미사'라는 간판을 걸고 안동서 오랫동안 사업을 했어요. 단골이 늘면서 봉화·영주·울진 등 경북 북부지역서 주문이 올 정도였는데, 훗날 근거지를 서울로 옮긴 후에도 꽤 오랫동안 사업운이 이어졌어요"라고 회고했다.
◆전 세계 희귀 카메라 수집
1970년대 월급을 모아 가장 먼저 구입한 것이 오토바이, 두 번째가 카메라였다. 카메라는 업무를 위해 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진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렌즈를 바꾸면 사진이 주는 색과 느낌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을 보면서 수시로 황홀감에 빠졌다. 이후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카메라 쇼핑을 빠트리지 않았고, 원하는 카메라를 얻기 위해서라면 미국·일본·뉴질랜드·아프리카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렇게 카메라를 찾아 발품을 판 나라가 100곳이 넘는다. 현재 그가 소장한 카메라의 50% 이상은 해외에서 온 것이다. 김 관장은 "한때 크리스티 경매에 자주 참여했는데, 한번 나가면 그날 출품된 카메라의 25~30%를 싹쓸이하다시피 가지고 왔다. 현지인들이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왜 사 가느냐' '장사하려는 거냐'는 등의 질문을 많이 했다"며 웃음 지었다.
틈날 때마다 한 점 두 점 모으기 시작한 카메라가 어느새 그의 집을 빼곡히 채울 정도로 늘어난 어느 날 한 원로 사진가는 그에게 뜻밖의 제안을 했다. 카메라 박물관을 준비하며 평생 모아온 카메라를 싸게 줄 터이니 박물관을 만들어보라고 한 것이다.
◆국내 최대 사설 카메라 박물관
2007년 경기도 과천에 개관한 한국카메라박물관은 그의 열정과 집념이 고스란히 축적된 집합체이다. 국내 최대 사설 카메라박물관으로 지하 1층~지상 3층, 연면적 843㎡ 규모로 2개의 기획전시관, 주 전시관, 부 전시관으로 이뤄져 있다. 카메라와 렌즈 등 2만5천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1840~1930년대 목재 카메라부터 초소형 스파이 카메라, 항공·군사용 카메라, 레인지 파인더 카메라, 폴딩카메라 등 진귀한 카메라들이 수북하다.
특별한 사연을 가진 카메라도 여럿이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앞두고 생산한 '콘탁스Ⅱ 라이플'은 전 세계에 4대뿐이다. 독일인 소유주가 다시 되팔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면 박물관에 팔겠다고 해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베트남 호찌민의 카메라 가게 한 곳의 물건을 몽땅 구입하면서 손에 넣은 목재 카메라, 영국이 스위스 시계 제조업체에 의뢰해 만든 초소형 콤파스Ⅱ롤필름 카메라 등도 특별히 아끼는 것들이다.
기억나는 방문객도 있었다. 국내 모 대학의 한 외국인 교수가 한동안 수시로 박물관을 찾았는데, 이유는 미국의 라이카 클럽 회원인 그의 눈에 이처럼 많은 라이카 카메라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은 전 세계에서 카메라박물관이 유일하기 때문이라는 것. 또 김 관장의 카메라 사랑을 전해 들은 독일 라이카사의 대표는 감사의 인사와 함께 특별한 선물을 보내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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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카메라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이 전시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한국카메라박물관 제공〉 |
◆기로에 선 카메라박물관
그의 일생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박물관은 안타깝게도 지금 운영중단의 위기에 처해 있다. 박물관이 속한 부지가 과천시 지구 특별계획구역으로 편입되면서 박물관 부지와 건물이 수용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박물관 측은 과천도시공사와 LH 등에 박물관 존치를 호소했지만, 해당 부지는 일체적인 개발이 필요해 박물관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김 관장은 정부와 지자체, LH 등 관계된 모든 곳에 민원을 넣고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시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김 관장은 "2018년부터 지금까지 4년여 동안 50차례 이상 민원을 넣고 행정심판을 요청했지만, 공무원들은 마치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을 반복했을 뿐이었다.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을 개인이 사비를 들여 운영한 만큼 지속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옳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지금까지 매년 1억원 이상 사비를 투입하며 박물관 운영을 고집한 것은 후손에게 문화예술적으로 의미 있는 뭔가를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라며 "부수기는 쉬워도 다시 만들기는 어려운 문화예술의 특성을 생각해서 지금이라도 개발계획의 수정을 고려해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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