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왕이 되려 한 사나이

  • 정만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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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30  |  수정 2022-12-30 07:29  |  발행일 2022-12-30 제15면

[정만진의 문학 향기] 왕이 되려 한 사나이
정만진 (소설가)

1865년 12월30일 영국 문인 러디어드 키플링이 태어났다. 그는 1907년 영어권 작가로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제국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었기 때문에 만년에는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다.

'정글북'과 더불어 키플링의 대표작으로 많이 거론되는 '왕이 되려 한 사나이'를 읽어본다. 제목만으로도 제국주의적 인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듯하다. 사기꾼 영국인 둘이 아직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으로 가서 왕이 될 계획을 세운다.

두 사람은 본국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그런데도 타 인종 거주지 또는 식민지에서 최고 권력을 장악하겠다는 야심을 품었다. 믿는 구석이라고는 영국인이라는 것뿐이다. 시작만으로도 제국주의자들의 오만방자가 확인되는 소설이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 동북쪽 오지로 간다. 둘은 최신식 화기의 굉장한 화력을 과시해 정말 왕이 된다. 현지인들이 둘을 진짜 '신적 존재'로 믿은 덕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저 그런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들통나 둘은 참혹한 최후를 맞는다.

두 주인공 드라봇과 카너핸이 파멸을 맞으므로 이 소설을 제국주의 선전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견해도 없지 않다. 이런 논란의 교육자료로 제격인 작품에 '화수분'이 있다. 전영택이 1925년에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시골에서도 남의 집 행랑살이를 하던 화수분은 먹고살기 어려워 날품팔이차 서울로 왔다. 큰딸은 먹일 게 없어서 남에게 입양 보냈고 어린 딸만 데리고 있다. 그렇게 하루하루 연명하는 중 고향의 형이 발을 다쳤다며 추수를 도우러 오라고 한다.

화수분이 시골로 떠난 후 돌아오지 않는다. 굶고 있던 아내가 동장군이 한창 위세를 떨치는 혹한인데도 어린 딸을 업고 남편을 찾아 나선다. 상경길의 화수분이 길가 나무 아래에 쓰러져 있는 아내와 딸을 발견한다.

세 가족이 한겨울에 한뎃잠을 잔다. 다음 날 아침, 지나가던 나무꾼이 동사한 부모의 체온 덕택에 살아남은 아이를 발견하고 데려간다. 결말 부분만 중시해 누군가는 '화수분'을 희망을 강조한 인도주의 소설이라 평한다.

'화수분'은 식민지 치하 한국인의 극빈을 증언하는 소설이다. 나무꾼은 대유도 상징도 아니다. 끝부분이나 한 문장으로 작품 주제를 재단해서는 안 된다. 임종 직전 종교에 귀의한다고 천사 또는 부처가 되지는 못하듯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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