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태의 제3의 눈] 언론자유, 2022년의 불쾌한 화두

  •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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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30  |  수정 2022-12-30 06:49  |  발행일 2022-12-30 제22면
언론자유 지표 한국은 43위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등

가장 앞자리 차지한 나라는

정치, 경제 모든 분야 우등국

시민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정문태의 제3의 눈] 언론자유, 2022년의 불쾌한 화두
국제분쟁 전문기자

"짜가니얀세" 버마 사람이 즐겨 쓰는 속담이다. "말이 적을수록 적이 적다"쯤 될 법한데, 한마디로 입조심하라는 뜻이다. 연말이라며 어제 집으로 놀러 온 버마 망명 언론인 친구들이 화제 삼았던 말이다. 으레, 2021년 쿠데타로 권력을 쥔 버마 군부가 온 나라를 전쟁터로 만들고 언론을 모조리 죽여 버린 현실을 한탄하며.

다들 직업이 직업인지라 언론자유를 안주 삼아 한잔 걸쳤고, 저녁나절 친구들이 남기고 간 말을 설거지하다 내친김에 국경없는기자회(RSF) 2022년 보고서를 꺼내 들었다. 올해 세계 언론자유 지표부터 훑어보았다. 조사대상 180개 나라 가운데 버마는 176위로 겨우 꼴찌를 면했고, 대한민국은 43위로 중간쯤에 턱걸이했다.

그동안 국경없는기자회가 밝힌 이 언론자유 지표를 되돌아보면 노무현 정부 시절 30위권이었던 대한민국은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2016년 70위로 곤두박질치다 문재인 정부 들어 40위로 올랐다. 20년쯤이 지나는 사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꼴이다.

'대통령도 깔 수 있는 대한민국인데 기껏 43위라고?' 너무 박한 게 아닌가 고개를 갸우뚱거릴 이들도 적잖을 듯한데, 사실은 권력과 금력에 휘둘린 우리네 언론 속살을 국제사회가 꿰뚫어 봐 왔다는 뜻이다. 언론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건 반드시 정부가 기사를 검열하고 기자를 잡아 가둔다든지, 언론사가 내부 검열로 기사를 통제하는 물리적 탄압만 가리키지 않는다. 권력자의 반언론관, 다른 말로 심리적 탄압까지 중요한 잣대로 삼는다. 국경없는기자회가 지난 5일 '대중매체를 향한 대통령의 적대적 행위를 우려한다'는 제목을 걸고 '문화방송'과 '교통방송'을 겨냥한 윤석열식 반언론관을 타박한 게 좋은 본보기였듯이.

왜 국제사회가 대한민국의 언론자유를 위태롭게 볼까? 그 답은 오늘 현장을 뛰는 기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언론자유의 본질은 기자들이 권력을 비판하면서 지레 자기검열을 안 해도 되는 상태를 뜻하므로!

얼핏 우리는 언론자유란 말을 추상적인 개념쯤으로 여겨온 게 아닌가 싶다. 좀 더 현실적인 지표들과 견줘보자. 국경없는기자회가 밝힌 언론자유 지표에서 가장 앞자리를 차지한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아일랜드를 눈여겨볼 만하다. 이 나라들은 실질국민소득, 교육 수준, 문맹률, 평균수명 같은 삶과 관련된 지표인 유엔 인간개발지수(HDI)에서도 최고 우등국에 올랐다. 세계은행이 내놓은 1인당 국민소득 분야에서도, '이코노미스트'가 꼽은 민주주의 지표에서도 모두 최고 점수를 받았다.

이 지표들은 언론자유가 있는 나라가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우등생이란 사실을 증명한다. 그 결과 이 우등생들은 유엔의 나라별 행복지수에서도 모두 꼭대기를 차지했다. 언론자유가 결코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적 용어가 아니란 말이다. 달리, 언론자유 없이는 진짜 우등국이 될 수 없는 경우를 보자. 언론자유 지표에서 139위인 싱가포르와 119위인 카타르다. 이 두 나라는 비록 국민소득 9위와 11위에 올랐지만 민주주의 지표에서는 66위와 114위에 그쳤다. 국제사회는 이 둘을 우등국이라 부르지 않는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나온 셈이다. 언론자유는 언론 노동자들의 영역만을 일컫는 게 아니다. 시민이 지닌 표현의 자유라는 절대적 권리를 가리킨다. 시민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까닭이다. 대통령의 온갖 분탕질로 오염된 언론자유를 곱씹으며 씁쓸히 한 해를 접는다. 2023년 '영남일보' 독자들의 건투를 빌며.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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