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사이] 토끼전을 읽으며

  • 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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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31 16:15  |  수정 2022-12-31 19:47  |  발행일 2023-01-02 제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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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

계묘년 토끼의 해가 밝았다.

어린 시절 고향 집이 떠오른다. 옆집 노부부는 토끼를 여러 마리 길렀다. 이웃집 토끼는 새끼를 자주, 많이 낳았다. 토끼의 임신 기간은 30일이며 한 번에 4~8마리씩 낳는다. 장날이면 노인은 싸리 바구니에 암수 한 쌍씩을 담아 장에 내다 팔았다.

노부부는 눈이 어두워 암수를 구별할 수 없었다. 담 너머로 내 이름을 부르면 나는 쪼르르 달려가 노인이 가르쳐주는 식별 법에 따라 짝을 지어주곤 했다. 겨울철 토끼 고기는 영양 보충을 위한 별미였다. 토끼 가죽은 판자 위에 말려 귀마개를 만들었다. 봄날 막 눈 뜬 새끼들을 마당에 내놓고 걸음마를 지켜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토끼전(별주부전)을 읽으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토끼는 꾀가 많고 영리하다. 토끼띠의 사람은 붙임성과 분별력이 있으며 진지하고 직관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상냥하고 동적이며 친구를 좋아한다고도 한다.

단점도 지적한다. 감상적이고 나약하며 우유부단하다. 화를 잘 내고 변덕스럽고 주관적이며 쾌락을 추구하고 예측불허의 측면이 있다. 토끼띠는 학문, 창작, 예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작고 약하지만, 번식력이 좋은 초식동물의 특성에서 나온 말들이다.

장단점을 읽다 보면 토끼띠만 그런 것이 아니고, 누구나 언급된 성향의 일면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로 보는 토정비결처럼 그냥 가볍게 훑어보고 넘어가면 된다.

새해 벽두 토끼의 왕성한 번식력과 강한 생명력에 새삼 주목한다. 많은 젊은이가 내일을 너무 어둡게 전망하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는다. 미래를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좋겠다.

가정을 꾸리고는 인생살이의 달고 쓴 일 모두를 경험해 보면 좋겠다. 공부하는 학생도 '세상은 생각하고 꿈꾸는 대로 된다'는 사실을 믿으면 좋겠다.

우리는 잠시 여유도 없이 뛰어야 겨우 이를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해 놓고 자신을 학대하며 다그친다.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무리에서 낙오한다고 생각한다.

세상 풍파를 헤쳐 온 사람들은 힘주어 말한다. "그냥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는 생각지도 못한 일을 성취할 수 있다."

사소한 습관이 몸과 마음, 운명을 좌우한다. 자신과 타인을 향해 긍정적인 말을 자주 하면 먼저 자신이 변하고, 궁극에는 이웃과 세상이 바뀌게 된다.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안전한 곳은 없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가능성의 문은 닫히게 된다. 두려움과 망설임이야말로 패배의 지름길이다.

인간은 시행착오를 통해 완성되는 존재다. 우리는 미완의 존재로 태어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죽는 순간까지 형성과정에 있는 존재'다.

그래서 인간을 'human being'이라고 한다. 너무 조급하거나 긴장하지 말자. 낙관적인 자세와 밝고 경쾌한 마음으로 살며, 사랑하며, 배우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해 본다.
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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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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