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함께 살아가는 배려 이야기' 공모전 수기] 아이에게 배우는 배려의 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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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1-02  |  수정 2023-01-03 08:59  |  발행일 2023-01-02 제19면
대구 성당초등 이정미 학부모 "애써 배려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상대 인정해야"

[2022 함께 살아가는 배려 이야기 공모전 수기] 아이에게 배우는 배려의 참 의미
'배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라는 이정미씨 가족이 봄나들이를 즐기던 중 환하게 웃고 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나에게 배려라는 것은 이 한마디로 정의되어 있었다. 그 행위는 더 들여다보면 내가 상대보다 어떤 이유에서든 나은 사람,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때로는 대가를 바라는 상대의 배려로 스트레스도 받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배려라는 것은 부정적인 의미가 되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더 이상 함부로 남을 배려하지도, 배려받기를 기대하지도 않던 삶을 살던 나에게 배려라는 것을 다시 배우게 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다리 교정 운동화 신는 아들에
또래 친구들 편견없이 도와줘
자신이 몸으로 겪은 경험 실천
타인 모습 받아주고 장점 찾아
아이 덕분에 진정한 배려 배워


나에게 아들이 생긴 것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이제까지 알고 있었던 모든 것들의 정의가 무너지고, 오랜 시간 배워오고 쌓아온 단어들의 정의조차도 재정의되는 그런 시간이었다.

5살이 되던 해 초, 아이는 유치원에 입학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체육 선생님으로부터 아들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자주 넘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대학병원 검진 결과 심각한 고관절 문제로 다리가 안으로 말리는 현상이 아들에게서 발견됐다. 아직 어려 수술이나 시술보다는 생활 교정을 추천받았고, 그 생활 교정 중 하나로 아이의 양쪽 발이 안으로 말리는 일명 안짱다리를 막기 위해 양쪽 교정용 운동화를 바꿔 신어야했다. 간단한 방법이라 별걱정 없이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 간단한 방법이 불러올 사건들에 대해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이와 외출을 나갈 때면 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 "아이 신발 거꾸로 신겼어요" "얘야 신발 똑바로 신어"라는 말에 "예쁜 다리가 되려고 교정 중이에요"라고 말하기도 한두 번. 어른인 나도 지쳐가는데 아직 어린 아들은 얼마나 상처가 됐을까.

외출도 꺼려지던 어느 날이었다. 공원에서 산책을 하던 중 아들을 벤치에 잠시 앉혀두고 아이스크림을 사러 간 사이 사건이 터졌다.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돌아선 나의 눈에 들어온 아들은 울며 나를 찾고 있었고 근처에는 웬 할아버지 한 분이 있었다.

"엄마 나 병신 아니지. 나 다리 이뻐지려고 그러는 거지?"

아들의 말에 놀란 눈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며 옆에 서 있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순간 풍겨오는 술 냄새로 사건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할아버지는 아들에게 신발을 똑바로 신으라고 했고, 아들은 자신이 신은 것이 맞는다고 말했고, 술 취한 할아버지의 입에서는 나와서는 안 되는 말이 나온 것이다.

"병신이가. 신발도 똑바로 못 신게. 너거 엄마가 그래 가르치드나?"

그 말은 어린 아들의 귀를 타고 가슴에 칼이 되어 꽂혔다. 그 사건 이후 아이는 신발을 거꾸로 신는 것을 부끄러워하기 시작했고, 말수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왜 늘 상황은 더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는 것인지. 의사 선생님은 가장 많은 시간을 생활하는 유치원 내에서도 신발을 착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아이는 친구들이 신발을 거꾸로 신는다고 놀리면 어쩌냐고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유치원 선생님에게 장문의 편지와 함께 상황을 알렸다. 선생님은 아무 걱정하지 말고 신발을 보내 달라고 했다. 걱정하며 신발을 보낸 후 하루, 이틀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고 아들의 소풍날이었다. 그날 오후 유치원으로부터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한껏 상기된 선생님의 목소리가 휴대전화 넘어 들려오던 중 나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수화기 너머 선생님도 울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신발을 처음 보내던 날, 선생님은 아들에게 첫 심부름을 시켰다. 아들이 없는 사이 선생님은 반 아이들에게 아들이 앞으로 유치원 안에서 신발을 신어야 하는데 이쁜 다리가 되기 위해서는 양쪽 발을 바꿔 신어야 한다고, 우리 친구들이 운동화에 밟히거나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 달라고 그리고 아들이 잘 신고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냐고 물었고 아이들은 "예" 하고 답했다. 하지만 선생님도 나에게 전해 들은 어른들의 이야기로 걱정을 놓을 수 없었던 상황.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들은 아이 중 누구도 아들에게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아들이 신발을 벗어두고 있을 때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신발을 찾아 들고는 아들에게 가져다주며 "예쁜 다리 되려면 신어야지"라고 하며 챙겼다. "빨리 예쁜 다리 되면 좋겠다"라고 말해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아들은 유치원에서 신발 신는 것에 대해 나에게 단 한 번도 불만을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중 소풍 당일, 친구들과 손을 잡고 두 줄로 공원을 걸어가던 중 운동을 나온 어른들이 아들을 향해 또다시 관심 아닌 관심을 보냈다.

"아이고 아들들은 저래 정신이 없다. 아가 신발 똑바로 신어야지."

그 말에 선생님도 놀라 아들에게 다가가려는 찰나, 아들 곁으로 반 아이들이 몰려들어 에워쌌다고 한다.

"친구는 다리가 예뻐지려고 하는 거예요. 신발 똑바로 신은 거예요." "말해봐, 그치?"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아들도 친구들이 함께하자 "네, 다리 예뻐지려고 저는 똑바로 신은 거예요"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고 한다. 그 순간 곁을 지키던 친구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고. 순간 선생님도 뭔가 뭉클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고 전했다.

"아이고 미안하다. 할머니가 몰라서 실수했네. 미안하다 아가야."

처음으로 들은 어른의 사과였다. 그 후 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들과 웃으며 다시 손을 잡고 소풍 길에 올랐다고 선생님은 말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을 울었다. 어린 아들에게 관심이라는 이유로 상처를 준 어른들과 달리 겨우 5살 난 아이들은 아들에게 진정한 배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른인 내가 아이들에게 배운 '배려'라는 단어의 새로운 정의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였다.

이제 아들은 9살 초등학생이 됐고, 자신이 몸으로 배운 배려를 잘 기억하고 실천하고 있다. 어느 날인가, 놀이터에서 어느 모녀가 수화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빤히 바라보는 아들에게 주의를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들, 저 친구는 소리를 들을 수…." "쉿, 엄마, 친구가 이야기하고 있어. 잘 들어봐."

순간 심장이 멎을 것만 같은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나는 어쭙잖은 배려라는 것을 하려고 모른 척 해주려고 했는데, 아들은 그 아이의 방법에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아들은 "엄마, 그 친구는 내 이야기를 정말 잘 들어주더라. 멋진 친구야." 아들의 말에서 나는 진정한 배려라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장점을 찾아주는 것. 우리는 상대를 배려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그 누구도 어쩌면 배려받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그저 인정받고 싶을 뿐일지도.

배려. 어렵지 않다. 우리는 배려하려고 애쓰지 말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주자. 그들 모두의 장점을 먼저 봐주고, 인정해 준다면 그들은 배려받고 있다는 부담감보다는 인정받고 있다는 뿌듯한 긍정의 감정을 키워가게 될 것이다.
<대구 성당초등 이정미 학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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