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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 소설가 |
1915년 1월6일 박목월이 태어났다. 그의 시 중 대표급 가작으로는 '나그네' '윤사월' '청노루' '이별가' 등이 있다. 동시 '얼룩소'도 노래로 만들어져 널리 애창되는 유명작이다.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엄마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두 귀가 얼룩귀 엄마 닮았네"
엄마소와 송아지가 아무리 닮아도 끝내는 헤어져야 한다. 박목월은 '이별가'에서 "하직을 말자 하직 말자" 하고 다짐해도 소용없다고 탄식한다.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이므로 서로가 "이승 아니면 저승으로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번뇌가 없는 곳이 이상향이다. "머언 산 청운사/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나는 열두 구비를// 청노루/ 맑은 눈에 // 도는/ 구름"
청노루가 사는 곳, 사람이 꿈에 그리는 정겨운 땅은 "머언 산"에 있다. 청노루의 맑은 눈동자 안에 구름이 돌고 있다는 묘사가 그 사실을 말해준다. 만약 사람 사는 곳 가까이라면 청노루의 눈에는 구름 아닌 다른 것이 비치게 된다.
그 다른 것의 대표를 도연명은 '도화원기'에서 전쟁이라 했다. 도연명은 무릉도원에서 살아가는 이국적 풍모의 사람들이 전쟁을 피해 그곳으로 들어왔다고 썼다.
"머언 산"은 무릉도원의 박목월식 변용이다. 도연명의 무릉도원에 사람들이 살듯이 박목월의 먼 산에도 한때 사람들이 있었다. "청운사"와 "기와집"이 증거이다. 다만 인적이 끊겨 "낡은" 집이 되고 말았다. '도화원기'는 "다시는 아무도 그곳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인간은 왜 무릉도원을 재발견할 수 없는가? 동양의 무릉도원 주민들은 우연히 들어온 외지인에게 "이곳의 존재를 밖에 알리지 말라"고 부탁한다. 평화 정신이 부족한 자들은 무릉도원을 누릴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그에 견주면 서양인들은 훨씬 메마르다. 그들은 애초 그리스 산악 초원 아르카디아를 이상향으로 여겼지만 교통수단 발달 후 답사를 해보니 영 아니었다. 결국 그리스어 '없다(ou)'와 '장소(topos)'의 합성어 '유토피아(utopia)'가 무릉도원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자연과학과 기술이 인류역사의 진보에 막중한 기여를 하는 점은 누구도 부인해서는 안 된다. 그래도 이상향을 꿈꾸는 문학, 나아가 예술을 도외시하는 물질만능주의 인생은 한마디로 비인간적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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