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척박함을 극복한 세계적인 맛

  • 구영웅 현대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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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1-10  |  수정 2023-01-10 07:46  |  발행일 2023-01-10 제14면

[문화산책] 척박함을 극복한 세계적인 맛
구영웅〈현대미술가〉

영국의 역사학자인 아놀드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1989~1975)는 현대 학문의 가장 빛나는 업적 중 하나로 꼽히는 자신의 저서 '역사의 연구(Study of History)'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인류는 험난하고 척박한 환경에 터를 마련했기에 역설적으로 문명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과거 싱싱한 해산물을 맛보기 힘들었던 안동에서는 가장 가까운 해안인 영덕에서 해산물을 운반해 와 먹었다. 동이 틀 무렵 영덕의 강구항을 출발하여야 겨우 날이 저물 무렵 비로소 임동의 챗거리장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간잡이가 소금을 뿌린 고등어는 안동까지 오는 동안 햇볕과 바람에 자연적으로 숙성되고, 덜컹거리는 달구지에서 자연스레 물기가 빠져 안동에 도착할 무렵엔 간이 잘 배고 육질이 단단해진 맛있는 간고등어가 되는 것이었다.

'치킨 프랜차이즈'의 메카인 대구는 한국 프랜차이즈산업에서 차지하는 의미와 위상이 남다르다. 이 외에도 대구에서 유명한 음식으로는 떡볶이와 분식류, 야끼우동, 중화비빔밥 등이 있다. 사실 치킨집, 분식집, 중국집은 전국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나는 이런 음식이 대구의 대표 음식인 것을 불과 몇 년 전에야 알게 되었다. 위에 언급한 음식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재료의 신선함보다는 조리법으로 승부한 음식이라는 것이다.

미술 지도를 할 때 미술의 요소를 재료에, 미술의 원리를 조리법에 비유해 설명한다. 어떤 음식은 신선한 재료를 확보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준비가 끝난다. 활어회나 제철 음식 등이 그런 예가 된다. 그런데 또 다른 음식들은 조리법에 따라 완전히 다른 맛으로 변하곤 한다. 음식에서 재료는 자연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지만 조리법은 전적으로 인간의 정성과 창의력으로 만들어진다.

나는 직접 작업도 하고, 미술을 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인간의 창의력에 대해 지금도 고민한다. 사실 새로운 음식을 만든다는 것은 굉장한 창의력을 요한다. 새로운 레시피는 재료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상태가 되는지, 물질적인 변화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순서로 조합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시간적인 이해와 실험도 필요하다. 즉 대상에 대한 호기심,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의식, 기존의 상황을 관찰하는 관찰력과 상황을 파악하는 분석력 그리고 지속적으로 실험할 수 있는 끈기와 의지가 필요하다. 창의력은 이 모든 것들의 조합으로 발휘된다.

식재료의 불모지라던 대구에서도 새로운 대표 음식들이 태어났다. 우리 고장 대표 음식들은 기존 재료들을 재조합하고 혼합하는 방식으로 진화한 결과물이다. 나는 이런 과정이 현대미술의 원리와 동일하다고 보았다. 그래서일까? 오늘 '치느님'도 맛이 예술이다.
구영웅〈현대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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