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의 천일영화] 다시, 슬램덩크를 관람하는 우리의 자세

  •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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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1-13 06:41  |  수정 2023-01-13 06:44  |  발행일 2023-01-13 제22면
90년대에 10대를 보낸 이들
'슬램덩크' 추억 하나쯤 있어
최근에 개봉한 '슬램덩크'
10대와 20대도 많이 찾아
세대간 소통의 장 열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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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 영화평론가

평일 저녁, 샐러리맨 복장을 한 관객들이 무리 지어 12세 관람가 애니메이션 상영관의 객석을 채운다. 마스크로도 가릴 수 없는 주름과 걸걸한 목소리를 가진 이 중년 관객들은 한껏 들떠서 영화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린다. 상영 중에는 곳곳에서 감탄사가 터지고, 영화가 클라이맥스로 치달으면 훌쩍이는 소리도 들린다. 극장 불이 켜지면 붉어진 눈시울을 애써 감추며 나오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지난 4일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 상영관의 풍경이다.

'아바타: 물의 길'과 설 연휴 개봉작 틈새에 잠시 개봉했다가 곧 OTT에서 만나게 될 줄 알았던 애니메이션이 6일 만에 50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며 좌석판매율 1위를 찍었다는 사실은 새삼 세월을 무색하게 만드는 '명작'의 존재감을 느끼게 한다. 90년대에 십대를 보낸 이들 중, '슬램덩크'와 얽힌 추억 하나쯤 없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영화에 대한 기사나 리뷰에 어김없이 원작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것도 슬램덩크가 필자들이 가장 감수성 충만하던 시절의 아이코닉한 문화콘텐츠였기 때문이다. 십대들의 놀거리가 한정적이었던 시절, 우리는 슬램덩크를 읽으면서 덩크슛을 꿈꿨고 열정과 의지를 배웠으며 승부의 세계를 맛보았다. 부모님을 졸라 신상 농구화를 신고 학교에 오는 아이는 그날의 스타가 되기도 했다. 슬램덩크를 좋아한다면 성적도, 취향도, 성별도 중요하지 않았다. 누가 어떤 캐릭터를 응원하든 존중받았고, 어떤 결말을 예상하든 귀 기울였다. 이 만화책 앞에서 우리는 평등하고 민주적이었다.

그러나 추억팔이 말고도 영화에서 할 이야기는 많다. 원작자이자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연출한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농구신의 속도감과 박진감을 표현할 만한 기술이 충분히 발전할 때까지 기다렸다고 언급한 바 있다. 1억2천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가 극장판으로 만들어지는 데 26년이나 걸린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목표대로 러닝타임 내내 산왕공고와의 대결을 보여주는 이번 영화는 실제 농구 경기를 보는 듯한 선수들의 움직임과 경기장 내의 사운드를 구현해냈다. 물론 슬로 모션이나 사운드 소거로 보다 극적인 연출을 한 부분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거칠면서도 빠르게 진행되는 농구의 묘미를 충분히 살린 작화가 돋보인다.

바뀐 주인공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엉뚱하고 다혈질이지만 바로 그런 모습 때문에 독자들을 웃기고 울렸던 강백호 대신 영화에서는 북산고의 포인트 가드, 송태섭이 주인공을 맡았다. 이노우에 감독은 영화는 영화로서 독립적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라며 팀에서 가장 키가 작고 반항기가 다분한 송태섭으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 영화에는 원작에 없는 송태섭의 가정사가 경기 장면 중간중간에 삽입된다. 경기 장면과 대비되는 느린 속도감의 플래시백이 영화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캐릭터 구축과 '슬램덩크' 시리즈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성장의 모티브를 놓치지 않으려 했던 작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강백호와 함께 사랑받았던 다른 캐릭터들의 뒷이야기가 아쉽기는 해도 산왕공고와의 경기에서 꼭 이기고자 하는 송태섭의 심리와 열망에 공감하기에는 충분하다.

30·40대 관객들에 이어 이제 레트로 문화에 관심이 많은 10대와 20대도 '더 퍼스트 슬램덩크' 상영관을 찾고 있다. 90년대 가요에 대한 관심이 그랬던 것처럼, 슬램덩크 열풍도 세대 간의 장벽을 허물고 소통과 교감의 장을 열어주길 바란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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