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함께 살아가는 배려 이야기' 공모전 수기] '은상' 존중과 배려를 알려준 미소천사 - 강림초등 이원욱 교사

  • 이원욱 강림초등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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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1-16  |  수정 2023-01-16 07:24  |  발행일 2023-01-16 제13면
발달지체 친구도 달린 학반 계주 꼴찌였지만 뜻깊어

[2022 함께 살아가는 배려 이야기 공모전 수기] 은상 존중과 배려를 알려준 미소천사 - 강림초등 이원욱 교사
삽화=정소현기자 kar03060@yeongnam.com

6학년 우리 반 아이들은 각자 다른 개성을 지녔지만 무리 없이 어울려 생활하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MBTI 성격유형검사의 결과가 16가지이고 우리 반이 23명인 것을 감안하면 비슷한 성격이 있을 법도 한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 반중에는 몸이 조금 약한 아이도 있는데 행동이 조금 느린 편이다. 아이가 가진 또 다른 특징은 순수한 표정으로 잘 웃는 것인데 이것이 매력으로 작용하는지 처음 보는 사람들도 아이에게 쉽게 다가간다. 다행히 반에는 이 친구를 배려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 데다, 본인도 구성원으로서 적극적으로 임해 여느 건강한 친구들처럼 잘 지내고 있다. 담임인 내가 우리 반 아이들에게 항상 고마워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히려 다른 친구들보다 더 큰 열정을 가지고 생활해 누구보다도 학교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비결은 아이만이 가진 특유의 긍정적인 태도 덕분일 거라는 결론을 내리고, 자신감도 불러일으킬 겸 그 부분에 대해 많은 칭찬을 해주고 있다.

큰 눈망울이 특징인 이 아이의 이름은 보민이(가명)다. 보민이는 내가 작년에 이 학교에 발령을 받고 5학년 담임을 할 때 옆 반의 조용한 학생이었다. 복도에서 마주칠 때면 말없이 수줍게 미소를 지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순수한 면이 많은 학생일 거라는 짐작을 했다.


늘 긍정적이고 밝은 보민이었지만
생각·행동 느려 학기 초에 조바심
우리 반 아이들 이해하고 응원해줘
코로나로 단절된 일상 인간미 넘쳐



사실, 처음에는 담임교사로서 걱정부터 앞섰다. 보민이만의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을 친구들이 배우면 좋겠다는 기대도 있었지만,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거나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겼을 때 제대로 된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컸다.

이런 걱정 때문이었을까? 학기가 시작되고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조바심이 났다. 보민이를 잘 이해하고, 긴박한 상황이 생겼을 때 올바른 대처를 해 줄 필요성도 있었다. 바로 보민이 어머니에게 연락을 드렸고, 생각과 행동이 느린 의학적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보민이는 발달지연이에요. 발달지체보다는 경증인데, 겁이 많고 긴장하면 잘 넘어집니다. 이런 점만 신경 써주시면 좋겠습니다."

아이의 아픔을 이야기하면서도 당찬 어머니의 말투는 나를 놀라게 했다.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고, 그런 부분을 보민이가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상담이 끝나자마자 발달지체, 발달지연 등을 검색해 보았다. 발달지체=정상적인 발달 속도와 비교해 느린 발달 양상을…. 정신지체를 발달지체로 표현하는 것은 가급적 장애가 아닌 아동 자체의 긍정적인 측면을 바라보기 위한 시도다.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용어 사전 내용 중에 발달지체의 마지막 문구는 마치 우리 반 이야기 같아 몇 번을 다시 되뇌었다.

'아동 자체의 긍정적인 측면…우리는 보민이가 가진 긍정적인 모습을 은연 중에 보고 있었던 것일까?'

아이들은 언젠가부터 보민이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를테면 체육시간 강당으로 반 전체가 이동할 때다. 한 줄로 이동하는 학급 규칙 특성상, 걸음이 느린 보민이를 기준으로 항상 두 그룹으로 나뉘고, 뒤쪽 그룹은 뒤처지기 마련인데,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며 이런 생각도 했다.

'보민이가 혹시 본인 뒤에 뒤처져 따라오는 친구들을 신경 쓰고 있지는 않을까? 차라리 제일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라 하면 어떨까.'

보민이에게 의사를 물어보기 전 다른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꺼냈고, 돌아온 아이들의 대답은 놀라웠다.

"아니에요 선생님, 보민이가 제일 뒤에 서면 혹시라도 넘어졌을 때 우리가 모를 수 있잖아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보민이를 아끼며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행동 같았다.

며칠 전에는 학년 체육대회가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나도 설레었지만 학반 계주를 생각하니 마음 한편에는 고민도 있었다. 보민이를 과연 뛰게 하는 게 맞는지 판단이 안 섰던 것이다.

사실, 학년 회의에서 학반 계주는 반 학생 모두가 운동장 한 바퀴씩을 달리도록 정했다. 모든 학생이 체육대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자는 취지였다. 정해진 대로라면 보민이도 당연히 뛰어야 하지만 긴장하면 잘 넘어진다는 어머니의 말에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웠다.

'계주에 무리하게 참여시켰다가 넘어지면 큰일인데….'

머리가 아팠지만, 행동이 느릴 뿐 보민이도 우리 반의 한 일원이라는 생각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다. 한 바퀴를 다 달렸을 때 보민이가 얻을 수 있는 자신감과 성취감은 앞으로의 보민이 삶에서 부딪힐 난관을 헤쳐나가는 데에 큰 힘으로 작용할 것 같았다.

결과는 우리 반이 꼴찌. 그러나 뜻깊은 결과였고 보민이를 격려하는 학생도 많았다. 나 또한 보민이를 달리게 한 것이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도 가능한 한 많은 도전을 하도록 하는 게 보민이를 위한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체육대회 날 마이크를 잡고 진행을 맡은 나는 대회가 끝나고 며칠 후에야 알게 된 사실도 있다.

"계주 때 스포츠 강사 선생님과 같이 손잡고 달린 아이는 몸이 약한 아이 맞지요?"

옆 반 선생님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보민이라는 직감이 들었고, 순간 몰려오는 감동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보민이를 배려해 주고 응원한 사람은 학급의 친구들이 다가 아니었던 것이다. 체육시간마다 수업 내용을 보민이도 할 수 있도록 수정해 오신 뒤 일대 일 지도를 하시는 스포츠 강사님. 그런 강사님이 갑자기 나타나 보민이의 손을 잡고 끝까지 함께 달려주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보민이를 넘어지지 않게 잡아준 '아름다운 손'은 더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보민이를 보면서 '다음주자에게 배턴을 넘겨줄 때까지 제발 넘어지지 마'라고 생각했다는 한 여학생의 일기 내용처럼, 반 친구 모두가 보민이를 응원했을 것이다. 또 보민이에게는 자신을 향해 쳐주는 응원의 박수가 큰 용기가 되었으리라.

아이들은 보민이가 놓인 상황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진정으로 필요한 도움을 주며 생활한다. 진정한 배려는 크든 작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도와주는 게 아닐까?

낯선 사람 경계하기부터 가르쳐야 하는 상황은 코로나19로 인해 더 심해졌고, 단절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도 보민이를 향한 따뜻한 배려 덕분에 우리 반에는 인간미가 넘친다. 보민이가 가진 긍정적인 부분, 즉 열정과 순수함은 우리 반에 큰 축복이다.

우리는 자신과 다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다. 보민이는 다양한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방법으로 존중과 배려를 알려주었다. 끝으로 친구들이 올바른 인성을 갖추는 데 도움을 준 보민이, 보민이가 우리 반이 되었을 때 가졌던 걱정을 기우로 만들어준 우리 반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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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욱 강림초등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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