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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현지 곽병원 홍보계장 |
가수 윤하가 지난해 가을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곡으로 음원 차트 1위를 기록했다. 윤하는 16세에 데뷔해서 '제2의 보아'라는 대중의 환호를 받으며 왕성하게 가수 활동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방송 활동이 뜸해졌고 인터넷으로도 소식을 들을 수 없던 중 우연히 유튜브 채널에서 '답을 찾지 못한 날'이란 제목의 자작곡을 듣게 되었다. 앳되고 사랑스럽던 외모를 기억하고 있던 필자는 어둡게 그늘진 윤하의 얼굴이 낯설었다. '이토록 모자란 난 어떤 쓸모일까'라는 가사를 들으며 정상의 인기 가수였던 윤하가 '꺾인' 시기를 보내고 있나 보다 추측했고 '윤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대한민국은 경쟁 구도가 심한 탓인지 승승장구하다 꺾였을 때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회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지 않은 듯하다. '실패는 불명예'라는 인식이 강하고 약점은 쉬쉬하고 숨기는 분위기다. 단적인 예로 명문대 신입생 중 의과대학에 가기 위해 반수(半修)하는 학생들로 인해 예산을 삭감당하는 등 학과 운영이 힘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대학교수들이 학교의 위상 추락을 우려하여 이 문제에 대해 쉬쉬하는 것을 들 수 있겠다. 공론으로 올려야 할 문제에 대한 대학의 태도를 보면서 약점이다 싶으면 무조건 숨기고 감추고자 하는 한국 사회의 심리를 읽을 수 있다. 이는 어떤 단체나 개인을 막론하고 공통적인 현상이다. 난임, 불임, 남편이나 시댁과의 갈등, 실직, 중독과 같은 약점은 1급 비밀이며 재벌 총수나 성직자처럼 사회적 지위가 높고 존경받는 직업을 가진 부모일수록 자녀의 약점이나 실수는 특급 기밀이다. 한국의 은둔 청년 수가 61만명이 넘는다는데 정작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든 현상 또한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미국은 이런 경우 오픈 마인드로 접근한다. 페이스북의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가 난임으로 인해 겪는 마음의 고통과 어려움을 친구들에게 오픈하고 도움받았던 경험을 페이스북에 게재하면서 전 세계 난임 부부들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보냈던 것과 상반된 분위기다. 위신과 체면을 지키기 위해 개인적인 상처나 어려움을 숨기고 쉬쉬하기보다 세상에 알리고 주변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때 어려움을 더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으며 사회 전체 또한 더 건강해진다고 생각한다.
성공 궤도에 있다가도 추락할 수 있고 불의의 사고로 장애가 생길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더욱 중요한 건 꺾였을 때 다시 회복해서 일어날 수 있도록 열린 마음으로 손 내밀어 주고 격려해 주는 마음, 즉 사회적 의식의 변화다.
윤하가 15년 만에 다시 정상의 위치에 올라 "몰래 카메라인 줄 알았어요"라고 소회를 밝힐 때 좌절과 절망 속에서 몸부림쳤을 윤하의 지난 몇 년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이토록 모자란 난 어떤 쓸모일까'라고 가사를 쓰던 당시 맥없이 스러졌을 수도 있었을 소녀가 다시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내 일처럼 기쁘다.
필자는 정부와 지자체가 섬세하게 돌볼 수 없는 사회 곳곳에 흩어져 있는 청년들과 소통하기 위해 선배들과 함께 모임을 갖곤 한다. 청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윤하처럼 빛나기를, 어려움이 있더라도 맥없이 스러지지 않기를, 혹 다시 일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3040이 있다면 "절망과 열망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값지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 중꺾마!
곽현지 곽병원 홍보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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