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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형 (음악학 박사) |
겨울 아침, 한이로의 시 '데칼코마니'(2023 영남일보 문학상 당선작)를 다시 펼쳤다. 필자에게 시를 읽는다는 것은 바흐나 모차르트를 연주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주어진 시의 코드가 적을수록 상대적으로 독자의 역할은 커지게 마련. 그래서 헤겔 같은 철학자는 주관적 정신의 영역을 전하는 예술에 있어 시의 단어는 악보의 음표에 비해 더 자유롭기 때문에 읽는 이의 개인적 감정과 내적인 삶이라는 낭만적 주제에 좀 더 부합한다고 말했던가.
쌍둥이 자매의 미묘한 관계와 감정을 다루고 있는 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독립된 한 개체로서 '나'의 내면과 정체성에 대한 발견이다. 시제로 삼고 있는 데칼코마니는 '화면을 밀착시킴으로써 물감의 흐름과 생기는 우연한 얼룩이나 어긋남의 효과를 이용한 기법'으로 어떤 흐름이나 그로 인한 우연성, 어긋남의 효과는 동일성의 차이를 말한다. 그 차이를 부각하기 위해 시인은 거울과 캐스터네츠, 마카롱의 이미지를 등장시킨다. 또한 데칼코마니는 프랑스 말로는 '옮기다' '번역하다'라는 뜻으로 뮤즈라는 신의 말을 인간의 언어로 옮기는 것이 번역이라면 이 시는 한이로씨가 자신의 말을 번역하여 옮긴 자기 독백의 시로 보인다.
거울의 방에 있는 것처럼 나는 나이지만 내가 아니다. 내가 아니지만 나이다. 이렇듯 너와 나의 경계로서 거울 속에는 내 속의 나와 또 다른 나-타자가 함께 존재한다. 그리고 멀리서 보면 실상처럼 보이는 것들이 가까이서 보면 허상일 때가 많다. 진위와 허실은 그 경계가 모호한 게 사실이다. 시와 시인은 같은가 다른가?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이 한 편의 시에서 유독 필자의 시선을 끄는 것은 "이따금씩/ 거울을 볼 때/ 나를 잊어버리는데// 나는 잘 있니?"라는 대목이다. 거울을 통해 외적인 모습만 줄곧 살피다가 어느 순간 나 자신의 안부를 묻고 나의 진정한 내면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나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게 마련이다. 이런 기분의 현상과 표정의 극대화를 위해 여성 화자를 설정했을까.
필자도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을 본다. 그리고 가끔은 거울에 비친 나와 진정한 나 사이에 의문을 품게 된다. 거울 안과 밖, 현실과 이상, 신체와 영혼은 언제나 균열을 하기 마련이지만 그 거리를 최대한 좁혀 나가는 의식적인 노력은 물론 우연한 마주침의 순간을 기대해본다. 바로 그때, 거울이 자화상이 되며, 바다는 바다이고 하늘은 하늘이며, 나는 나가 되지 않을까. 나는 잘 있는가?
임진형 (음악학 박사)

임진형 음악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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