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메일] CCTV가 달린 고해소

  • 조응천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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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06  |  수정 2023-02-06 06:51  |  발행일 2023-02-06 제25면

[여의도 메일] CCTV가 달린 고해소
조응천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고해성사는 교회에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는 가톨릭의 대표적인 종교예식 중 하나로 신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익숙하다. 가톨릭 교회법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고해 내용 비밀 누설 금지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사제는 고해성사의 내용을 절대로 발설하면 안 된다.(비밀봉인의 불가침) 그런데 CCTV가 달린 고해소나 사제가 아닌 제3자가 고해성사 내용을 엿듣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신자는 자신의 죄와 치부를 스스로 검열하며 문제가 될만한 잘못은 고백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는 고해성사의 의미는 퇴색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법조계는 성당의 고해소에 기어코 CCTV를 설치하고 엿듣는 것을 가성비 높은 수사 기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 헌법 제12조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변호인을 접촉하여 형식적 도움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변호인과 의뢰인 간 충분한 정보와 증거의 제공, 진솔한 의사 교환이 전제되어야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권리이다. 변호인도 사제처럼 직무상 알게 된 내용에 대해 '비밀유지의무'를 지고 어기면 처벌받는다. 역설적으로 변호인은 비밀유지의무를 지고 있지만, 수사기관·법원·행정기관 등의 의뢰인 비밀에 대한 개시 요구를 거부할 권리는 없다. 수사기관은 압수수색을 통해 의뢰인과 변호사가 나눈 카톡 메시지, e메일, 법률자문서, 변론 전략, 면담 시 작성된 메모까지 가져간다. 영장을 발부받아 압수수색하는 것은 양반이고, 로펌을 압수수색하겠다고 압박해 임의제출을 강요하거나, 변호인에게 의뢰인과의 상담 내용을 밝히지 않으면 의뢰인에게 불이익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압박하거나, 의뢰인에게 감내할 수 없는 압박을 가해 변호인과의 상담 내용을 진술하게 한다. 국세청, 금융감독원 등도 이런 방식으로 자료를 가져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니 비단 검찰과 경찰만의 문제는 아니다. 형식적으로 영장을 발부해주는 법원의 문제도 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2016년 전까지만 해도 검찰은 의뢰인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자료를 확보해갔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그 대상은 변호인까지 확대됐다. 국민이 모두 알 만한 대형 로펌도 예외는 아니다. 당시 검찰은 이례적인 일이며 앞으로 로펌에 대한 압수수색이 상례화되지 않을 거라고 변명했다. 그런데 7년이 지난 지금 상례화를 넘어 새로운 수사기법이 된 듯하다. 방어권 행사를 위해 의뢰인이 변호인에게 제공한 모든 정보가 수사기관에 넘어가고 향후 재판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면, 누가 변호인에게 진솔하게 털어놓겠는가. 결국엔 부실한 변론으로 귀결된다. 또 법정에서 검사와 피고인·변호인은 서로 대등한 위치에서 유무죄를 다투어야 한다. 형사법의 대원칙인 '무기대등의 원칙'이다. 그런데 검사가 모든 정보와 변론전략까지 간파하고 있다면 결국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싸움이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의뢰인과 변호인 간 의사교환 내용에 대해 공개를 거부할 수 있는 '비밀유지권'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나는 일찌감치 변호인의 비밀유지권을 도입하는 '변호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와 일본을 제외하고는 모든 국가가 비밀유지권을 보장하고 있다. 국내 로펌에서 근무하는 외국 변호사들이 우리나라는 비밀유지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매우 놀란다고 한다. 비밀유지권은 시대적 요구와 국제적 흐름이기도 하다. 더 이상 수사 편의를 목적으로 의뢰인이 고해성사한 내용까지 탈탈 털어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조응천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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