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오래됐고 친숙하다. 인더스 문명이 남긴 최대의 도시 유적 모헨조다로에는 거대한 대중목욕탕이 있었다. 아마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기 전에 목욕재계하는 성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의 경우 삼국유사에 신라의 재상이 동래온천에 입욕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목욕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제법 많이 전해지고 있다. 근현대에 들어 1920년대에 평양과 서울에 공중목욕탕이 각각 들어섰지만,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맨몸을 보여줄 수 있나"라는 거부반응이 커서 목욕문화가 정착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찜질방이나 사우나 등 목욕풍습이 여러 형태로 변화되고 발전하면서 한국식 목욕문화가 자리를 잡기에 이르렀다.
최근 들어 일부 목욕탕에서 '빨래' 때문에 논란이 일고 있다. 수년간 지속한 코로나19 팬데믹에다 가파르게 치솟은 난방비 때문에 동네목욕탕을 중심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과도한 빨랫감을 갖고 오는 손님들로 업주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는 것이다. 실랑이가 잦은 업장에서는 아예 '빨래금지'라는 안내문까지 붙여놓을 정도라고 한다.
빨랫감으로 규정지을 만한 잣대가 애매하긴 하지만, 그건 상식선에서 서로가 이해하고 지켜야 할 문제이지 싶다. 목욕탕에 비용을 지불한 것은 입욕료를 낸 것이지, 빨래할 수 있는 권리를 산 것은 아닐 것이다. 지나친 권리 주장은 진상에 가까워 보인다. 장준영 논설위원
국내의 경우 삼국유사에 신라의 재상이 동래온천에 입욕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목욕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제법 많이 전해지고 있다. 근현대에 들어 1920년대에 평양과 서울에 공중목욕탕이 각각 들어섰지만,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맨몸을 보여줄 수 있나"라는 거부반응이 커서 목욕문화가 정착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찜질방이나 사우나 등 목욕풍습이 여러 형태로 변화되고 발전하면서 한국식 목욕문화가 자리를 잡기에 이르렀다.
최근 들어 일부 목욕탕에서 '빨래' 때문에 논란이 일고 있다. 수년간 지속한 코로나19 팬데믹에다 가파르게 치솟은 난방비 때문에 동네목욕탕을 중심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과도한 빨랫감을 갖고 오는 손님들로 업주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는 것이다. 실랑이가 잦은 업장에서는 아예 '빨래금지'라는 안내문까지 붙여놓을 정도라고 한다.
빨랫감으로 규정지을 만한 잣대가 애매하긴 하지만, 그건 상식선에서 서로가 이해하고 지켜야 할 문제이지 싶다. 목욕탕에 비용을 지불한 것은 입욕료를 낸 것이지, 빨래할 수 있는 권리를 산 것은 아닐 것이다. 지나친 권리 주장은 진상에 가까워 보인다. 장준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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