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노후파산과 금융치료

  • 장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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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27 06:54  |  수정 2023-03-27 06:57  |  발행일 2023-03-27 제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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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영 논설위원

늙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서러운 일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과는 약간 감정의 결이 다른, 이런저런 서글픔이 깔려있다. 주름이 늘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은 데다, 기억은 흐릿해지고 단어도 자주 까먹는다. 세월은 갈수록 모자람과 단점을 부각하며 야속하게 흐른다. 이해해 주고 위로해 주는 가족이나 지인 그리고 이웃이 있으면 그나마 버틸 만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어느 정도 경제력이 전제돼야 성립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이 늙어간다는 것은 먼 옛날 호환마마보다 더 무섭다고들 한다.

가스비와 건보료에다 장바구니 물가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진행되는 인상러시가 고만고만한 수준의 은퇴자들을 힘겹게 만들고 있다. '이런 노후는 상상도 못 했다'는 것이 이들의 하소연이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이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인 만큼 허튼소리로 여겨지지 않는다. 노후대책이란 단어가 지금은 솔깃하고 필요성도 충분히 공감된다. 인위적으로라도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임에도 불구, 대부분의 50~60대 이상 장삼이사들에겐 사실상 '그림의 떡'이었다. 해야 하지만 할 수 없었고, 하기 싫었지만 해야 하는 일상이 반복되는 삶을 쳇바퀴 돌 듯 살아왔기 때문이다. 자녀양육이나 집 장만 등에 치여 먹고살기 바빴기에 그저 믿을 것이라고는 '열심히 성실하게 살면 어떻게 되겠지' 정도였다.

눈앞에 닥친 현실은 예상보다 빠듯하고 더러는 가혹하다. 7년 전 일본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적잖은 파장을 몰고 온 NHK 다큐 '노후파산'(2016년)이 느닷없이 소환되고 있는 것 역시 남의 일이 아니라는 현실인식이 깔린 탓일까. 이 프로그램의 내용은 아주 가까운 미래에 마주해야 할 불편한 진실일지도 모른다. 가족과 함께 적당한 규모의 집이 있고 부지런하게 직장도 다니며 꼬박꼬박 연금도 넣었는데 어느새 노후파산의 길로 들어섰다는 경험담이 구체적으로 담겨있다.

물론 일을 안 해도 재산이 증가하는 부자는 예외다. 대체로 일을 안 하면 재산이 줄어드는 서민이나 일을 해도 재산이 감소하는 빈곤층이 해당된다. 게다가 병에 걸리거나 경제활동이 여의치 않으면 노후파산은 불가피해진다. 친구를 만나거나 취미활동을 하는 등 외부와의 교류는 시간이 흐를수록 뜸해지고 스스로를 위축시키는 마음의 벽은 점점 견고해지기 마련이다. 무던히 애를 써도 희망보다 절망의 크기가 커지는 사람에게 '돈이 전부가 아니다'라거나 '행복은 노력으로 얻는 것'이라는 식의 위로나 강요는 어떤 의미에서 폭력과 다름없다.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있으니 다큐의 부제처럼 '장수의 악몽'이 될 수도 있다. 급변하는 사회적 경제적 여건으로 인해 주택연금 신청자가 크게 늘고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국민연금을 조기수령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 덜 절실한 사람들의 꼼수와 편법이 판을 치는 세상이긴 하지만, 정부의 '금융치료'가 필요해 보인다. 경제력으로 파생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돈만 한 게 없다. 직접지원보다는 정교하고 치밀하게 설계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상당수 국민이 우려하는 삶의 질 하향평준화를 막으려면 국가가 나서서 적절한 보호장치를 가동해야 한다. 한평생 성실하게 살아온 평균의 국민이 개인의 일탈이나 무능이 아닌 다른 이유로 황혼의 삶이 팍팍하고 고통스러워진다면 국가는 과연 책임이 없을까.
장준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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