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대표 정치인 없는 TK의 비애

  • 임호
  • |
  • 입력 2023-03-30  |  수정 2023-03-30 07:01  |  발행일 2023-03-30 제23면

[영남타워] 대표 정치인 없는 TK의 비애
임 호 서울 정치부장

'보수의 심장'이라는 TK(대구경북). 대통령 선거가 있을 때면 보수정당 후보들은 어김없이 지역을 찾는다. 아니, 간절함을 담아 애절하게 부탁한다. 지난해 대선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도 유세 기간 TK를 19차례나 찾았다. 경기도(24회)를 제외하면 가장 많이 방문한 것이다. 그때마다 지역민은 열렬히 환영했고, 표로 응답했다. 보수 정권의 대통령이 탄생하면 스스로 위기라 느낄 때마다 서문시장 등 TK를 찾아 보수 결집의 불쏘시개로 활용했다. 이런 패턴은 이젠 보수의 공식이 됐다. 이 때문일까. TK 민심은 보수 정권 창출의 핵심이자, 마지막 보루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총선이 다가오면 지역 국회의원들은 좌불안석이다. 언제나 물갈이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TK는 공천만 받으면 어렵지 않게 당선될 수 있으니, 예선(공천)이 곧 본선(당선)이 된다. 자연스럽게 낙하산 공천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이번 국민의힘 3·8 전당대회에서도 TK 지역 국회의원들은 김기현 당 대표를 위해 온몸을 불살랐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내년 총선에서 공천을 받기 위한 몸부림이다. 의원 개개인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면서 보수의 심장이란 자부심을 가진 지역민 입장에서는 왠지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자신을 뽑아주는 지역민보다는 공천을 쥔 대통령과 당 대표에게 더 목을 매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역 국회의원들을 만날 때마다 늘 했던 부탁이 있다. "TK 의원끼리 자주 만나고, 소통해 달라"는 것이었다. 편협한 지역 이기주의가 아니라, 국가와 지역 발전을 위해 자주 소통하고, 필요하다면 한목소리를 내며 서로 돕자는 뜻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를 실천하는 TK 지역 의원은 보지 못했다. 21대 국회에 TK 지역구 의원은 25명. 비례대표까지 포함하면 27명이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절대적 지휘를 갖고 있지만 3부 요인 중 하나인 국회의장을 배출한 것은 20년 전이다. TK 출신 마지막 국회의장은 16대 국회 전반기였던 이만섭 전 국회의장(2000년 6월~2002년 5월)이 마지막이다. 11명의 국회의장이 탄생하는 동안 TK는 먼발치에서 구경만 했다.

필자는 최근 국민의힘 이준석 전 당 대표와 인터뷰를 했다. 이 자리에서 이 전 대표로부터 뼈아프면서도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는 자신에 대한 '대구 출마설'이 지역을 대표할 정치인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구경북을 아무리 둘러봐도 향후 10년 내에 대통령 후보나 당 대표가 될만한 정치인이 없다고도 했다. 또 지역과 국가를 위한 어젠다를 내놓는 TK 정치인도 없다고 비판했다. 실제, 국민의힘에서 전국적 인지도를 가진 대중 정치인은 없다. 이 전 대표의 이야기를 본인 관점으로 치부하더라도 한편으론 틀린 말이 아니다.

다음 달 7일로 예정된 국민의힘 원내대표 경선에 윤재옥(대구 달서구을) 의원과 김학용(경기 안성) 의원이 2파전을 벌리고 있다. 하지만 TK 의원들은 여전히 단일대오를 형성하지 못하고, 사분오열하고 있다. 정치권은 원내대표가 누가 되든 공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지 않기 때문에 TK 결집력이 약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보수의 심장이라 자부하는 지역민은 TK 정치권이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출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에 참담함을 느끼고 있다. 우리 스스로 인물을 키우지 못하면서 누구를 원망하겠냐는 넋두리를 하고 있다.
임 호 서울 정치부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