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경북 경산 서상길청년문화마을, 생활의 달인들은 떠나고…그리움 조용히 자리잡았네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
  • 입력 2023-04-14 07:42  |  수정 2023-04-14 07:45  |  발행일 2023-04-14 제12면

1
중앙이용원과 경산이발테마관. 이발을 테마로 한 최초의 전시관이다. 1956년 개장해 2014년까지 운영한 중앙이용원을 보존시키고 옆에 있던 낡은 주택을 보수해 만들었다.

그래, 그랬지. 이 길을 따라 청도로 갔었지. 옛 국도 25호 서상길. 길 이름은 이제야 알게 되었지만 이 길에 대한 기억은 도로명 주소가 생기기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차로 도로 양쪽으로 일, 이 층 규모의 조막만 한 건물들이 따르르 늘어서 있었고 의상실, 요릿집, 금은방, 인쇄소, 수족관 등이 재야의 고수 분위기를 풍기며 조용히 자리해 있었다. 적산가옥도 더러 보였다. 많은 차가 오갔고 자주 서다 가다를 반복했으며 따로 인도가 없음에도 어깨를 빗기며 오가는 사람이 많았다. 일 년에 한 번 이 길을 지난 것이 20여 년, 이후 2013년 국도 25호선이 경안로로 이전한 뒤로는 거의 잊고 있던 게 맞다. 수년 전 경산시장에 들렀을 때도 아주 대단한 변화는 느끼지 못했다. 단지 재야의 고수들이 많이 떠났구나 싶은 쓸쓸한 예감 정도랄까.

경산읍성 서문 밖 가장 번화했던 길
市 승격 후 관공서 떠나가 점차 침체
오래된 주택-소박한 상가 오밀조밀
청년문화마을, 도시재생 마중물 사업
국내 첫 '이발 테마' 전시관도 들어서
젊음·향수 공존하는 새로운 공간으로


5
중앙이용원 내부. 자료와 비품은 폐업할 당시의 것들이다. 흰색 각타일로 짜인 세면대와 펌프, 물뿌리개, 장기판, 괘종시계, 물품 보관함 등이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중앙이용원과 경산이발테마관

요양병원, 경산시장, 장례식장, 청년회의소, 모텔들, 경산문화원, 여성회관 등 굵직굵직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서상길을 지나 장산로 너머로 다시 이어지는 서상길에 든다. 오른쪽으로 중앙이용원이 보인다. 중앙이용원은 1956년에 문을 열고 영업하다가 2014년 문을 닫았다. 창 너머는 깜깜하나 간판은 말쑥하다. 연립한 박스형 건물에 '경산이발테마관'이라 적혀 있다. 이곳은 경산시와 국립민속박물관이 함께 기획하고 조성한 자료보존 체험형 전시관이자 이발을 테마로 한 최초의 전시관이다. 말쑥한 간판도 중앙이용원이 문을 닫을 때까지 내걸었던 간판 그대로다.

테마관은 이발소 분위기의 작은 공간이다. 빙글빙글 삼색등이 돌고 으레 이발소에 한두 점씩 걸려 있게 마련인 '이발소 그림'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거울이 있고 가발을 써 볼 수 있는 이발소 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각종 이발 도구와 신문 기사, 영상 자료가 이발의 역사와 변화상을 소개한다. 특히 1895년 단발령 이후 등장한 이용업의 역사와 1970년대 장발 단속을 비롯한 풍속도 엿볼 수 있다. 자료 가운데에 '이용 요금표'가 있다. 1966년 이발 요금은 70원, 이 요금은 당시 자장면 두 그릇 가격이었다.

이발사협회에 소속된 이발사 세 분의 인터뷰도 시청할 수 있다. "예전에는 손님 한 명에 대여섯 명의 종업원이 붙어 서비스를 했으니, 말 그대로 왕 대접을 받는 기분이었을 거예요."(최상호 이발사)

중앙이용원은 테마관과 연결되어 있다. 껌껌하다. 이발 중인 사람 모형은 유리벽으로 가둬 두었다. 정말 유물이 된 풍경이다. 이발 의자와 이발 가위, 이용업 영업 신고증, 이발 가격표 등 자료와 비품은 중앙이용원이 폐업할 당시의 것들이다. 흰색 각타일로 짜인 세면대와 펌프, 머리를 감을 때 쓰던 물뿌리개, 차례를 기다리며 놀던 장기판, 괘종시계, 물품 보관함 등이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옛날 중앙이용원 내외부의 사진도 볼 수 있는데 지금과 다른 것은 사람뿐이다. 동네마다 쉬이 볼 수 있던 이발소는 여러 해를 지나 학생들의 두발 자유화가 이루어지고 미용실 수가 증가하는 등 시대에 부침하다 서서히 사라졌다. 내가 사는 동네의 명동이용소가 생각난다. 어르신은 멈춤에 가까운 슬로로 걸으시지만 지금도 매일 문을 열고 닫으신다.

◆경산의 원도심 서상동에 청년문화마을

서상동(西上洞)은 경산읍성의 서문 밖 높은 지대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서문은 지금의 경산문화원으로 나가는 길목에 있었다고 한다. 서상길은 남천과 나란히 흐르며 마을을 가로지르는데 고려 시대부터 대구와 청도를 잇는 주요 도로였고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설되면서 경산의 행정과 문화, 산업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이 길에 경산읍사무소, 경찰서, 등기소, 보건소, 농촌지도소, 우체국, 시장관사, 도서관 등이 들어서 있었고 오일장이 열렸다. 약 700m에 이르는 서상길 포장도로가 경산 최초의 아스팔트 길이었다니 그 위상을 짐작할 만하다. 경산에서 가장 번화했던 서상길은 1989년 경산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대부분의 관공서가 이전하고 경안로가 생기면서 점차 침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중앙이용소에서 남쪽 경안로 합류 지점까지 서상길 일대를 '서상길청년문화마을'이라 한다. 오래된 주택과 소박한 상가들이 오밀조밀 머리를 맞대고 있고 인도가 있는 길은 깨끗하다. 서상길은 2018 도시재생뉴딜사업지구로 선정되어 근래 몇 년간 변화를 맞았다. 중앙이용원과 경산이발테마관은 서상동 골목의 기억을 보존하고 젊음과 향수가 공존하는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도시재생의 마중물 사업이었다. 청년창업플랫폼인 '코웍스페이스', 마을부엌, 어울림센터, 마을관리소 등이 생겼다.

2
경일백화점은 1949년에 문을 연 경산 최초의 백화점이었다. 지금은 카페가 들어서 있고 철근이 드러난 벽면에 '경일백화점' 다섯 글자만이 황금빛으로 반짝인다.

이곳저곳에서 쌈지공원을 만난다. 우진솜공장은 오래된 가게라 한다. 양조장 자리에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다. '떡 철공소방앗간'이라는 간판이 있는 건물은 일본인이 운영하던 철공소를 매입해 방앗간으로 개조한 적산가옥이다. 지금은 서상상회라는 새로운 간판이 함께한다. 낡은 자전거가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는 '남부자전거'는 45년 이상 2대째 자전거 수리를 해 오고 있다는데 오늘은 셔터가 내려져 있다.

입구에 겹벚꽃 한 그루가 휘날리는 '종가집'은 서상길에서 소문난 맛집이다. 이 집은 1920년에 지어진 고택으로 약 25년 전에 식당으로 변모했다. 마당에는 우물이 있고 100년 이상 되었다는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무섭게 가지치기한 모습으로 우뚝하다. 경산이발테마관 옆에 자리한 카페는 경일백화점이 있던 자리다. 용성면 송림리 출신 김성운씨가 오래전부터 마을에서 생산되던 질 좋은 한지를 전국적으로 유통시키기 위해 1949년에 문을 연 경산 최초의 백화점이었다. 지금은 철근이 드러난 벽면에 경일백화점 다섯 글자만이 황금빛으로 반짝인다.

골목 안으로 들어선다. 골목길을 걷다 보면 파랗게 칠해진 대문을 종종 본다. 거기에는 '서상길 집수리 프로젝트'라 새겨진 목판이 걸려 있다. 낡고 불편한 집을 고쳐주는 프로그램으로 경산지역의 청년들과 함께 진행했다고 한다. 목판을 12개까지 보았는데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소방차가 진입하기 곤란한 골목길에는 소화기가 설치되어 있다. 경산소방서에서 소화기를 기증하고 서상동 주민이 소화기함을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했다고 한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전혀 모르는 동네지만 애틋이 정겹다. 일관된 소박함과 고요가 있고 동요 없이 맞이하는 그리움 같은 것이 있다. 골목 저편의 남천 변에 오른다. 새봄이 왔고, 천변에는 노란 유채꽃이 맑게도 흐드러졌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Tip

 달구벌대로를 타고 경산 방향으로 간다. 중산삼거리에서 경산역 방향으로 우회전해 직진, 경산역 앞 역전사거리에서 좌회전한다. 경산교 지나 100m 정도만 가면 오른쪽으로 서상길이 시작된다. 경산시장, 경산문화원 등을 지나 장산로와 교차하는 사거리를 지나면서부터 '서상길청년문화마을'이 시작된다. 사거리 건너 바로 오른쪽에 중앙이용원과 경산이발테마관이 있다. 경산이발테마관의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주말과 법정 공휴일은 휴관한다. 관람료는 무료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