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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호영남대박물관 학예연구원·문화인류학 박사 |
중국 베이징의 특징적인 뒷골목, 후퉁(胡同)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은 동일한 장소가 사람에 따라 어떻게 인식되고 활용되는가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특히 전통적인 장소를 보존하거나 개발하는 방식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이런 과정들을 추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퉁은 다양한 종족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진 매력적인 장소이다.
도시 전통 주거문화 잘 보여줘
문화대혁명때 '항진붕' 영구화
市, 역사문화도시 만들기 진행
새로운 건축 대체 문제점 제기
베이징 후퉁은 원나라 때부터 형성되기 시작해 오늘날까지도 그 큰 틀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언어학자인 쟝칭창(張淸常)에 따르면 후퉁은 몽고어 'xutok', 즉 우물(水井)에서 파생된 말이다.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출판한 '현대한어사전(現代漢語辭典)'에 후퉁은 '작은 골목길'이라고 설명되어 있고, 중국의 백과사전 격인 '사해(辭海)'에는 '원나라 사람들이 골목을 후퉁이라고 지칭했다'고 되어 있다. 후퉁은 현대 베이징의 2차 순환도로 내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베이징의 전통적인 주거문화를 잘 보여 준다. 전통 건축인 사합원(四合院)이 일렬로 늘어 서 있고 그 사이에 형성된 통로가 바로 후퉁, 즉 뒷골목인 것이다. 이들은 각기 베이징이라는 도시 공간의 세포와 신경이다. 왜냐하면 베이징은 거대한 사합원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금성(紫禁城)과 더불어 수많은 사합원과 후퉁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베이징의 구시가지와 기존의 주민거주구역에는 대규모의 변화가 일어났다. 베이징의 옛 성벽과 성문이 대부분 철거되었기 때문이다. 천안문광장이 웅장한 자태로 건설되었고 장안대가(長安大街)가 확장되었으며, 공장·학교·상점·기관·호텔 등과 같은 공용시설이 대규모로 건설되기 시작했다. 또한 인구의 증가로 인하여 주거공간은 더욱 부족해졌다. 이때부터 사합원 안의 정원과 같은 여유 공간에는 가건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현대화 과정에서 후퉁은 이미 베이징의 발전과 건설에서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았다.
문화대혁명 시기는 베이징의 후퉁과 사합원의 공간이 가장 치명적으로 훼손되는 기간이었다. 1960년대 홍위병(紅衛兵)들은 사합원의 각종 조각품과 문양 그리고 예술품들을 마구잡이로 훼손하였을 뿐만 아니라 평범한 인민들의 전통적인 문화체계 또한 마음껏 유린하였다. 설상가상으로 1976년에는 베이징 근처의 당산(唐山)에서 대지진이 발생하게 된다. 이때 지진에 대비하기 위해 이미 복잡해지기 시작한 사합원의 공간 안에 많은 '항진붕(抗震棚)'이 들어서게 된다. 이때 만들어진 '항진붕'들은 계속되는 인구의 증가로 인해 가건물에서 영구적인 건물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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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 후퉁. |
1980년대 이후, 베이징 후퉁에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통과 과거에 대한 향수를 지닌 화교(華僑)들과 개혁개방의 과정에서 부를 획득한 중국인들이 낡은 사합원을 사들여 그것을 허물어 새로운 사합원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대에 들어서서는 베이징에 장기 거주하는 외국인 중에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잡원(大雜院)'이 되어 버린 사합원의 거주자들은 베이징 교외의 허름한 집 한 채 구입할 자금도 안 되는 보상금을 받고 이주를 강요받았다.
2000년대 와서 베이징 후퉁은 소위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베이징시(市) 차원에서 '역사문화도시' 다시 만들기의 일환으로 공표된 '보호계획'은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방법론에서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오래된 집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전통 건축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공간은 의도와는 달리 죽은 공간으로 변모할 수 있다. 그 속에 살던 사람이 흔적들이 사라지고 공허한 건축만이 남아 있는 식이다. 베이징 역사문화도시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후퉁을 화석화된 박물관으로 만드는 데 힘을 소비할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의 활기가 느껴지는 장소로 재탄생시키는 데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최경호<영남대박물관 학예연구원·문화인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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