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전북 임실 옥정호 붕어섬, 수몰의 기억 품었구나…처연히 아름다운 붉은 흙, 푸른 풀밭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
  • 입력 2023-04-21 07:43  |  수정 2023-04-21 07:44  |  발행일 2023-04-21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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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산공원이 꽃에 뒤덮여 있다. 벼랑의 고지에 망향탑이 서 있고 왼쪽 아래로 양요정이 조그맣게 보인다. 가뭄으로 드러난 붉은 흙과 푸른 풀밭이 처연히 아름답다.

종일 비라는 예보가 있었건만, 큰 산을 지날 때에만 소리 없이 앞 유리창이 부예질 뿐이다. 비가 좀 와야 할 텐데, 물안개는 단념해야겠다. 옥정호는 호수 같지 않다. 댐으로 생긴 호수지만 그저 너른 강 같다. 가물어서가 아니라 원래 지형이 그러하다. 호수를 오른쪽에 끼고 달리면 물길 너머 산자락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지난 꽃 시절 이곳도 대단했겠다. 하늘을 뒤덮은 벚나무 가지가 한없이 이어진다. 그 사이 여러 가문의 비석들을 지난다. 전주이씨, 전주최씨, 천안전씨 등 가문의 세거지와 묘지를 알리는 비석들이다. 모두 댐 건설로 물에 잠긴 마을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국사봉 아래 관광버스 몇 대가 서 있는 주차장에 잠시 멈춘다. 멀리 강 같은 옥정호를 가로지르는 출렁다리가 보인다. 다리는 붕어섬에 닿아 있다. 붕어섬 가운데가 붉다.

섬진강 상류 옥처럼 맑았다던 호수
원래 지형 때문에 너른 강처럼 보여
댐 세워지며 모두 18개 마을 사라져
섬으로 변한 산등성이 붕어 닮은꼴
뱃길 대신하는 출렁다리 올해 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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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산공원은 2009년부터 2017년까지 9년간 꾸몄다고 한다. 꽃잔디와 튤립이 어우러진 꽃밭 너머로 출렁다리가 보인다.

◆옥정호 요산공원

옥정호는 섬진강 상류에 해당된다. 호수의 8할이 임실 운암면에 속해 있는데 예부터 이 지역의 섬진강을 운암강(雲巖江)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처음 댐이 건설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8년이다. 호남평야의 농사를 위해 운암댐을 짓고 호수를 운암호 또는 섬진호라 불렀다. 이후 1965년 운암댐 하류 쪽에 국내 최초의 다목적댐인 섬진강댐을 완공했다. 수위가 더 높아졌고 호수는 더 넓어졌으며 운암댐은 물에 잠겼다. 운암면의 가옥 300여 호와 경지면적 70%가 수몰됐다. 대개 댐과 그로 형성된 호수는 이름이 같기 마련인데 섬진강댐과 옥정호는 다르다.

섬진강댐의 근처에 옥정리(玉井里)가 있다. 조선 중기 한 스님이 이곳을 지나다 옥처럼 맑은 호수가 들어설 것이라 해서 마을 이름을 옥정리라 했다 한다. 이 전설 때문에 운암호는 옥정호가 되었다. 그 스님 참 신통하다. 도롯가에 노란 비옷을 입은 안내요원들이 손짓을 한다. 비는 오지 않는다.

출렁다리 입구 매표소를 중심으로 식당 몇 개와 전망스탠드, 관리 사무소 등이 들어서 있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호수로 가늘게 이어지는 벼랑의 땅이 꽃에 뒤덮여 있다. 꽃잔디와 튤립, 영산홍 등이 무섭도록 자신의 색을 드러내는 꽃밭을 가로질러 간다. 꽃들은 한껏 물오른 모습이고 축축한 흙 내음이 짙다.

벼랑 가 높직한 자리에 양요정이라는 조그마한 정자가 있다. 조선 선조 때 인물인 최응숙이 임진왜란 이후 이곳에 낙향해 지은 정자다. 양요정은 맹자의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智者樂水)'에서 왔다. 아래 강가에 있었던 것을 수몰되기 전 옮겼다고 한다. 지금도 이리 멋있는데 예전에는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이곳은 정자 이름을 따 '요산공원'이라 불린다. 2009년부터 2017년까지 9년간 꾸몄다고 한다.

땅 끝 가장 고지에는 망향탑이 서 있다. '1만5천여 실향민들의 아픔과 애환을 달래고, 운암의 영원한 발전과 번영을 기원하며' 탑을 세운다고 새겨져 있다. 잿마을, 도마터, 어리골, 버들골, 학산들, 노리목재, 뱃마당, 사랑골 등 18개 마을 이름과 수몰 세대주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댐이 완공되고 43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수몰 세대주 명단을 기록하고 마을 이름을 하나씩 호명했다고 한다. 그 이름들이 정말 너무나 빼곡해서 그만, 목이 콱 막힌다.

주변으로 잘 관리된 무덤 몇 기가 봉긋하다. 망향탑 뒤편으로 물가를 따라 데크 산책로가 놓여 있다. 차르르 물소리, 꼬륵꼬륵 물고기 소리 들린다. 산책로 따라 유채꽃이 만발했고 몇 그루 박태기나무의 강렬한 분홍 꽃이 가지를 꽉 붙잡은 여린 모습으로 피어나 있다. 데크의 끝에서 붕어섬으로 가는 출렁다리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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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남쪽 끝에 독재바위가 줄지어 있다. 외앗날이 섬이 되자 독재의 바위를 깨어내 배가 다닐 수 있도록 했다.

◆붕어섬 생태공원

"가라! 가라!" 출렁다리 가운데에서 한 사내의 커다란 음성에 우뚝 선다. 처음 들어보는 소리다. 사냥꾼 우두머리의 외침 같고 장군의 호령 같다. "저기저기, 고라니다. 강을 건너네. 간다, 간다. 가라! 가라! 갔다!" 사내의 외침에 사람들이 일제히 서서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너무 놀라서인가. 나에게는 고라니가 보이지 않는다. 물줄기를 가로지르는 하얀 포말의 선만이 보일 뿐이다. 수위가 낮다. 붉은 흙과 푸른 풀밭이 드러나 처연히 아름답다.

붕어섬의 원래 이름은 '외앗날'이다. '날'은 산등성이를 가리킨다. '외앗'은 자두의 옛말인 '오얏'이 전라도 방언으로 발음된 것이라 한다. 자두나무가 많았나? 외앗날 마을은 옥정호에 잠기고 산등성이만 남아 섬이 되었다. 그리고 국사봉에서 바라보는 섬의 모양이 붕어를 닮았다 하여 붕어섬이 되었다. 섬의 남쪽 끝에 바위들이 줄지어 있다. 독재바위다. 예전에는 저곳을 독재라고 불렀다. 독은 돌의 지역 방언이다. 호수가 되기 전 독재가 돌고개였다는 뜻이다. 외앗날이 섬처럼 변하자 마을 사람들은 독재의 바위를 배가 다닐 수 있을 만큼 깨어냈다. 배는 호수 속에서 옛날의 고개를 넘나들게 되었다. 오늘 붕어섬은 섬이 아니고 독재바위는 독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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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섬은 이제 생태공원이다. 고저가 다채로운 대지에 작약원, 억새길, 단풍길, 숲속 놀이터, 정자, 카페 등이 조성되어 있다.

붕어섬은 수십 년간 배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요산공원과 붕어섬을 연결하는 출렁다리는 지난해 10월 완공되었고 올해 개장했다. 총길이는 420m, 폭은 1.5m다. 주탑의 높이는 80m로 붕어를 형상화했다. 붕어섬은 이제 생태공원이다. 고저가 다채로운 대지에 작약원, 수국원, 억새길, 단풍길, 배롱길, 메타세쿼이아길, 참나무길, 신나무 숲, 수변 산책길, 숲속 놀이터, 숲속 도서관, 광장, 쉼터, 정자, 전망대, 카페, 나루터 등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2017년까지 2가구 주민이 농사짓고 살았다고 한다. 생활의 흔적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지만 저 꽃밭과 저 물가가 삶의 터전이었을 것이다.

붕어섬 가운데의 붉은 빛은 '붕어섬정원'을 가득 메운 영산홍이었다. 영산홍 속에서 국사봉을 마주한다. 숲속도서관의 키 큰 소나무 아래 빨간 우체통이 산뜻하다. 소나무 사이로 국사봉이 보인다. 외앗날 전망대에서 국사봉을 올려다본다. 국사봉전망대 주차장의 정자도 보인다. 섬의 이곳저곳에서 국사봉이 보인다. 이른 아침 옥정호의 물안개를 찾아 국사봉에 오르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신비롭게도 옥정호의 물안개는 붕어섬 주변에서부터 시작되고 또 붕어섬에서부터 걷힌단다. 그리고 아침 안개가 걷히고 햇빛이 비치기 시작하면 붕어섬은 황금빛으로 변한다고 한다. 오늘 아침 붕어섬은 아주 잠시 황금빛으로 빛났다고 한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Tip

12번 대구광주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순창IC에서 내린다. 27번 국도 전주방향으로 가다 운암대교 건너 우회전해 749번 지방도 국사봉로를 타고 가면 된다. 국사정이 있는 국사봉전망대 주차장을 지나 조금 더 가다 옥정호 출렁다리 방향 입석1길로 빠져나가면 된다. 길 따라 갓길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고 주차비는 무료다. 출렁다리 입구 왼편 망향정과 양요정 일대가 요산공원이다. 공원을 둘러보는 것은 무료다. 붕어섬으로 가는 출렁다리 입장료는 성인 3천원, 학생 1천원이다. 매주 월요일 휴장하며 3월부터 10월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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