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 칼럼] 한 사람이 길목 잘 지키면 천명의 敵이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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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4-28  |  수정 2023-04-28 06:56  |  발행일 2023-04-28 제23면

[이재윤 칼럼] 한 사람이 길목 잘 지키면 천명의 敵이 떤다
이재윤 논설위원

오늘은 이충무공 탄신기념일이다.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지 꼭 50년. 위인의 생일에서 유래한 기념일은 두 개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스승의 날(5월15일). 이날이 세종대왕 탄생일이란 사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순수하게 위인의 이름을 따서 생일을 기리는 기념일은 '이충무공 탄신기념일'이 유일한 셈이다. 올해가 탄신 478주기다.

작금 시대적 상황이 '이순신'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열강의 '진영 몰이'와 패권 경쟁, '투키디데스 함정'(새로운 강국이 기존의 패권국에 도전하면서 발생하는 전쟁)에 빠진 세계적 규모의 위기, 그 사이에 낀 대한민국. 임진왜란 당시와 지금의 상황이 어찌 그리 판박이인가.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은 일어나고야 마는 건가.

앨리슨 교수는 500년 동안 16번의 '투키디데스 함정'이 있었다고 한다. 12번은 전쟁으로 이어졌지만 4번은 평화적으로 해결됐다. '어떻게?'에 주목해 보자. 15세기 말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는 교황의 중재로, 20세기 초 신흥 강국 미국과 기존 패권국 영국은 '서로를 인정할 때 자국 이익을 지킬 수 있다'는 현명한 판단으로 위기를 넘겼다. 1940∼80년대 미국과 소련은 '핵무기' 때문에 전쟁을 삼갔고, 2차 대전 후 영국 및 프랑스와 독일은 'EU'라는 틀을 만들어 충돌을 피했다. 앨리슨은 "미·중 지도자가 과거의 성패로부터 제대로 배우기만 한다면 전쟁을 치르지 않고 핵심 이익을 충족시킬 실마리를 찾아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두 나라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이 패권 싸움에 한반도의 운명은? 전쟁의 교두보가 될까. 평화의 완충지가 될까. 400여 년 전 이순신은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나라를 지켰다. 턱없는 열세의 군사로 23전23승이란 놀라운 전과를 올린 명장. 오로지 미래를 예측하고 위기를 준비한 결과였다. 그를 새삼 기억하는 것은 이 교훈적 메시지 때문이다. 천하대세를 감지하지 못하고 정쟁으로 날밤을 새우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신하 핑계, 백성 핑계도 낯익다.

윤석열 대통령의 생각은 무엇일까. 외교적 수사의 거품을 걷어내고 그의 발걸음만 따라가 보면 미·중 충돌을 기정사실로 여기는 듯하다. '어쩌면 내(윤석열 대통령) 임기 중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수 있다. 남중국해에서 일 터진다. 세상은 미 동맹 민주주의 연대와 그 밖의 세계로 양분돼서 이제 충돌이 멀지 않았고, 임박한 파국을 준비해야 한다. 빨리 이기는 편에 붙는 게 상책이다.' 김종대 전 국회의원의 독심술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한국이 미·중 대결의 최전선에 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방일·방미의 성과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위치설정'으로 귀결됐다. 한쪽에 다 걸기. 세력균형에 기반한 '불안정한 안정'은 한편으론 비극이었다. 더 큰 불행은 강대국의 이해득실 속에 오랜 시간 한반도의 '불안정한 안정'이 '기도(企圖)'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분단 체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실패하면, 한반도는 미국과 중국이 대결하는 '세 번째 그레이트 게임의 핫스폿'이 될 것이다.(예일대 니컬러스 스파이크먼 교수) 그 문턱까지 다다른 느낌이다.

한 사람이 길목을 잘 지키면 1천명의 적을 떨게 할 수 있다.(이순신) 길목을 지키는 한 사람, 이 시대의 숨은 이순신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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