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개그의 끝은 다큐인가

  • 장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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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01  |  수정 2023-05-01 06:59  |  발행일 2023-05-01 제23면

[월요칼럼] 개그의 끝은 다큐인가
장준영 논설위원

선거제도 개편과 관련, 19년 만에 열린 국회 전원위원회의 결말은 예상을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당리당략과 백가쟁명식 주장이 난무한 가운데 사실상 '빈손'으로 종료됐다. 발언에 나선 의원들은 하나같이 국가와 국민을 앞세워 그럴듯한 의견을 제시했지만 속내는 아무도 모른다. 굳이 총평을 하자면 '양가감정(兩價感情)의 경연장'쯤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내년 4월로 예정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국민 앞에 뭔가를 보여드려야 하는 조바심과 함께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은 각 당의 이해득실 등이 충돌하면서 혼란스러움만 연출됐다.

핵심은 '어떤 방식으로 몇 명을 뽑을지'였다. 이번 위원회에는 △도농복합 중대선거구제+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 △소선거구제+권역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3건이 상정됐다. 익숙지 않은 단어를 찾아가며 몇 번을 읽었으나 확 와닿는 게 없다. 관련 전공자나 선거제도에 관심 있는 일부를 제외하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당최 이해하기 힘들다. 아마 몇 달 지나면 '각 당이 대승적인 차원에서 서로 양보한 끝에 선거제 개편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지 싶다. 이렇게 바꿨으니 유권자들께선 당을 보고 찍든, 인물을 보고 찍든 알아서들 하시라는 통보와 다름없다.

정치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갈수록 굳어지고 있다. 먹고살기 힘들 때는 더더욱 그렇다. 선입견이란 게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으나 국내 정치와 관련해서는 한결같이 부정적이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결과물들이 선입견이나 편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부지불식간에 학습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국회 전원위원회의 바통을 이어받아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조만간 공론조사에 나서고, 당내 의견 조율이 시작된 만큼 어떤 결과가 도출될지 속단하기는 어렵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좋은 의견도 많이 나왔는데 실패했다'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지금까지는 토론의 시간이었고 이제부터는 협상의 시간"이라고 말했다.

토론이든, 협상이든 결과에 대한 기대치가 그리 높지 않은 데는 학습의 힘이 작용한다. 미국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으로 평가하지만 다른 이들은 우리가 이룬 것으로 평가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해지는 정치인의 설화(舌禍)를 비롯, '내로남불'이나 '유체이탈 화법' 등은 사실상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이모 교수를 이모(姨母)로 해석한다거나 '특정 목사가 우파진영을 전부 천하통일했다'는 식의 언동은 여야를 막론하며 그 사례는 차고 넘친다. 순간순간은 개그였으나 모아보니 다큐멘터리였다. 대부분 국민의 시각이 이럴진대, 정작 그들은 모르거나 애써 외면한다.

국회의원 정수도 뜨거운 감자다. 어떤 의원은 "국회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종식하기 위해서는 감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의원은 "의원 수가 줄어 입법부 역할이 약화되면 누가 좋아하겠느냐"며 축소반대를 외친다. 그 나름의 확대 및 축소 논리가 있겠으나 경험상 다다익선이 성립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증원에 대한 불편한 시각이 다수 존재하는 이유는 인원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의정활동 수준 및 질과 관련된 사안이라는 깨달음이 있기 때문이다.장준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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