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우리는 이민자를 맞을 준비가 돼 있는가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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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08 06:52  |  수정 2023-05-08 06:51  |  발행일 2023-05-08 제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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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논설위원

'이민자의 나라' 미국의 이민 역사는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을 빼놓곤 논할 수 없다. 서부개척시대 이민정책의 기초를 다진 장본인이어서다. 그가 쓴 '미국에 이주하려는 이들을 위한 안내'에 이런 내용이 있다. '유럽 명문가 출신임을 내세우는 이에겐 미국 이민을 권할 수 없다. 미국에선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신분이 뭐냐고 묻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이 같은 개방·실용적 이민정책은 오랜 세월 부동의 '세계 1위 경제대국' 미국을 지켜온 원동력이 됐다.

프랭클린 얘기를 꺼낸 것은 최근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워딩과 오버랩돼서다. "경북을 '아시아의 작은 미국'으로 만들겠다"고 한 다짐이다. 관련해 경북도가 추진 중인 '외국인 이민정책'은 작금 인구소멸 문제의 실효적 해법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가볍지 않은 자문(自問)이 머릿속을 맴돈다. '과연 우리는 이민자를 맞을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가'이다. #외국인에게 'K 로망'을 심어주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다. "원더풀 코리아"를 연발하는 외국인. 그 모습에 한국인은 감동받는다. 시쳇말로 '국뽕'에 젖기도 한다. #방송에서 유창한 한국말을 뽐낸 한 외국인이 있었다. 그 모습에 한국인은 호감을 보냈다. 그러던 중 그는 인종차별 논란에 비판조 얘기를 했다가 역풍을 맞고 사라졌다. 두 사례에서 보듯 외국인을 향한 우리 정서엔 이른바 '선택적 포용심'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박하게 말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이랄까. 여기엔 인종·출신 국가에 대한 편견이 개입된다. 이는 '전가보도(傳家寶刀)'와 같은 단일민족론과 무관하지 않다. 역사적 소임(민족의식 고취)을 다했는데도 여전히 한국인 뇌리에 DNA처럼 스며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다문화 사회였다. 고려시대 땐 다양한 이민족 귀화인을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했다. 우리 이민정책이 이 같은 본질적 문제에서 출발해야 하는 이유다.

제도적 인프라는 어떠한가. 캐나다·호주 등 이민 강국의 관련 정책은 구미부터 당긴다. 타깃은 고급 이민자. 거의 '모시다시피' 한다. 요건을 갖춘 이에겐 지체 없이 영주권을 내준다. 공공주택 입주 혜택을 주는 곳도 있다. 과연 한국이 이들 나라보다 메리트가 있는 곳일까. 회의적이다. 세계 1위의 양육비를 비롯해 과도한 사교육비, 불안정한 집값, 수도권 일극주의…. 한국행이 마뜩잖을 게 한둘이 아니다. 인프라가 비교열위이면 누가 오고 싶어 하겠나. 경북 이민정책도 우수 외국인 유치에 방점을 두지 않았나. 그들을 잠시 데려다 쓰고 돌려보내는 게 아니다. 여기서 꿈을 일구며 먼 훗날까지 우리와 함께 어울려 살아갈 이들이다. 이민자를 위한 제도적 환경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철우 도지사는 "외국인에게 따뜻하고 차별 없이 대우하겠다"고 말했다. 지당하다. 한국을 찾을 이민자를 피부색·모국(母國)의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대하는 자세다. 그들에게 개인의 행복과 한국의 발전을 위해 살아주길 바라되 그들의 '아이덴티티 (identity·정체성)'까지 잊어달라고 요구하지는 말자. 이른바 '다름의 가치'를 존중하는 마음이다. 차제에 공존과 상생을 위한 다문화 교육을 제대로 시작해야 한다. 학교는 물론 단체와 직장에서도. 범국민적 인식의 대전환이 선행되지 않고선 이민국가로의 길이 결코 순탄치 않기 때문이다. 이민정책,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 소홀함이 없도록 준비하자.이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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