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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분선<대구시립무용단 수석단원> |
우리는 가끔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필자 역시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었다. 작년 11월 공연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을 때 리허설을 하다 발가락 5중족골이 골절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급하게 병원으로 가 골절된 부위에 핀을 박는 수술을 하고는 병실에 누워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무용수에게 다리부상이란 생명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발이 묶인 채 움직일 수 없으니 그 기분은 가히 절망적이었다. 두 달 동안 방안에 누워 깁스 된 발만을 쳐다봤다. 조금씩 발을 바닥에 딛기 시작하고, 쩔뚝거리지만 걸을 수 있게 되고, 가볍게 뛰기 시작했을 땐 '이젠 춤을 출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필자의 발 상태가 그렇게 희망적이지는 않았다. 19년이라는 무용단 생활에 누적된 피로가 발을 온통 삼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쉬어 가면 될 텐데 회복이 덜 된 상태로 무대에 올랐다. 당연히 제대로 된 춤을 출 수 없었다. 어느새 자존감이 바닥을 친 나를 발견하고는 '춤을 춰서 행복한 나'를 외치던 필자가 '춤추는 게 재미가 없는 나'가 되어 있었다.
그 후 "저 춤 추는 게 재미없어요"라는 말을 달고 다녔다. 그런 필자에게 누군가 말했다. "가수가 제일 힘든 게 뭔지 알아요? 나이가 들면 성대가 변하니 소리가 안 나옵니다. 특히 고음이 꺾이죠. 얼마나 절망적이겠어요. 그래도 노래하죠. 아름다움은 어디에나 있으니 춤도 나이가 들고 부상이 오면 기교는 떨어질지 몰라도 또 다른 아름다움이 생길 거라 생각됩니다."
이어 사진과 함께 메시지도 도착했다. 일본 국보로 지정된 이도다완의 사진이었다. "이도다완은 조선의 도공이 무심하게 만든 막사발이죠. 한국의 예술적 경지가 무심과 솔직함이라네요. 미학적으로 꾸미는 게 없으니 원래 그 자체가…그게 예술의 처음이자 끝이죠."
이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필자는 지금까지 현대무용과 아크로바틱을 접목한 기교적이고 화려한 춤만이 내가 출 수 있는 최고의 춤이라 생각했었다. 필자에게 건넨 누군가의 위로의 말이 화려함 속에 가려졌던 나의 꾸밈없는 춤의 깊이를 들여다보게 하는 순간이었다.
결국 위로는 타인을 통해 내 안의 소리를 듣는 건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아직 부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춤을 춰서 행복한 나'의 모습을 찾아가는 중이다. 만약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온다면 내 안의 소리에 먼저 귀 기울여보길 바란다. 그 순간 뜻밖에 위로가 찾아올지도 모르니 말이다.
김분선<대구시립무용단 수석단원>

김분선 대구시립무용단 수석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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