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秀才들 모두가 의대 간다면? 국가 미래 어둡게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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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06  |  수정 2023-06-06 06:52  |  발행일 2023-06-06 제23면

의대 합격선이 최근 4년 새 최고점을 찍는 등 '의대 쏠림'이 심화하고 있다. 종로학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학년도 정시 일반전형에서 전국 27개 의대 합격생 가운데 상위 70%의 수능 국어·수학·탐구 평균 백분위 점수는 98.2점으로 지난해(97.8점)보다 0.4점 높다. 대학들이 합격생의 백분위 점수를 공개한 2020학년도 이후 최고 점수다. 의대 선호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수재(秀才) 대부분이 의대라는 블랙홀에 빠진 듯하다.

의대 선호 현상은 1990년대 말(IMF 외환 위기) 이후 두드러졌다는 게 유력한 시각이다. '평생 직장'의 개념이 사라져 미래가 불확실해진 탓이었다. 이른바 '고소득 마이 잡(my job)'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이과계열 상위권 수험생들은 너도나도 의대생이 되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이젠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이공계 학과에 들어가고도 자퇴한다. 재수, 삼수를 해서라도 지방 및 수도권 의대생이 되기 위해서다. 그런 학생이 해마다 1천명을 웃돈다. 의대 선호가 유달리 심한 대구에선 '고교별 의대 진학 실적'이 인근 주택 시세를 좌우한다는 웃지 못할 얘기까지 나온다. 20~30년 전만 해도 이과계열 인재들은 이공 및 의학 계열에 골고루 지원했다. '대학입시 전국 수석=서울대 물리학과 입학'이라는 말도 있었다. 성적 좋은 수험생의 의대 선호를 뭐라 할 순 없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의대 광풍'은 잦아들어야 하는 게 맞다. 대한민국 수재들이 모두 의사가 된다고 상상해 보라. 4차 산업혁명 시대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손 놓고 있을 일이 아니다. 의사 대신 이공계열의 길을 걸어도 가치 있는 미래를 약속받을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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