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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분선 대구시립무용단 수석단원 |
예술가들은 누군가에 의해 기록되지 않는다면 그저 한 시대를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존재가 될 것이다. 무용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무용인들이 세상과 이별을 하며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을 때이다. 필자는 춤을 너무나도 사랑했으며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무대를 갈망했던 세 사람을 기억하고 있다.
먼저 나의 스승님 (故)김소라 교수님. 1980~2000년대를 활발히 활동하며 대구무용을 중앙무대로 확장한 대구의 대표 현대무용가이다. 200여 편이 넘는 작품 활동 중 2003년 만들어진 '봄바람 속에 안긴 한반도'와 '파장'은 전혀 다른 성격의 작품이었다. 전작은 김국진 첼로 산조·바이올린 산조 곡에 맞춰 상체의 움직임을 많이 살려 휘몰아치거나 부드러우면서 한국적인 느낌을 많이 녹여낸 작품이었다. 특히 하얀 의상 속에 무지개색으로 포인트를 주어 봄의 화사함을 더했다. 후작 '파장'은 제목처럼 끊이질 않은 연속 동작으로 반복적 요소가 많이 들어가 김소라 춤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된 음악 선곡과 움직임이었다. 의상에서도 잘 사용하지 않은 탁한 회색빛에 파란색 선으로 포인트를 넣어 차가운 느낌을 주기도 했다.
두 번째 주인공은 (故)윤경호 무용수이다. 필자와 아크로바틱 듀엣을 함께 한 초창기 파트너이다. '대구시립무용단의 헤라클라스'라고 불릴 만큼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어 리프트(남자무용수가 여자무용수를 들어 올리는 기술) 동작을 가장 잘하는 무용수였다. '오아시스2' '착향' '장미없는꽃집' 세 작품 모두 2009년에 아크로바틱 요소를 접목해 만들어진 윤경호의 대표안무작이다. 특히, '장미없는 꽃집'은 세상과 이별하던 마지막 순간까지도 무대에 올라 춤에 대한 열정을 표현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경북예고 출신의 (故)박민정 무용수이다. 큰 키에 긴 생머리, 큰 손과 발을 가져 남자무용수 못지않은 힘과 굵직한 움직임 속에 여성미를 잘 표현하는 친구였다. 고교생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그 춤사위에서 풍기는 무게감과 감정들이 모두를 놀라게 했었다.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만큼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춤추기를 좋아했었고, 필자와 함께 무대에 오른 '숨'(2005)과 '안녕'(2008) 두 작품에서도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내면의 춤을 거침없이 표현했던 기억이 있다.
필자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세 사람의 춤. 그들의 춤 인생은 짧았지만, 필자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춤을 추고 있다. 이 작은 기록이나마 그들의 춤이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되지 않길, 필자의 간절한 마음에 힘이 보태어져 그들의 기록이 더 많이 남겨지길 바라본다.
김분선〈대구시립무용단 수석단원〉

김분선 대구시립무용단 수석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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