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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영 논설위원 |
대구에서 출발한 삼성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대표 기업이다. 숱한 위기를 발상의 전환이나 한발 앞선 기술력 등을 통해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을 거듭해 왔다. 더러 구설에 휘말린 적도 있으나 지금은 국가경제를 지탱하는 한 축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브랜드 자체가 신뢰를 심어주는 단계로까지 올랐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름에 걸맞은 위상을 가지는 데는 긍정적 의미의 '일등주의'가 한몫을 했고 그 정신은 아직도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스포츠에도 관심이 많아 오래전부터 야구·축구·농구·배구 등 흔히 말하는 4대 프로스포츠 구단을 운영하고 있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사회적인 책임을 다한다는 취지에 부합하기 위해 매년 적지 않은 예산을 쓴다.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는 것이 스포츠의 속성이긴 하지만 팬들 입장에서는 응원하는 팀이 지는 것보다 이기는 게 훨씬 낫다. 그들은 때로는 열광하고 때로는 분노하면서 애증을 키운다. 구단 명칭에 나란히 '삼성'이 들어있기 때문에 그룹 이미지는 어쩔 수 없는 종속변수가 된다.
올해는 4대 종목 모두 바닥권이다. 시즌을 마무리한 프로농구와 프로배구는 최하위에 머물렀고 레이스가 한창인 야구와 축구는 현재 순위표 맨 아래에서 헤매고 있다.
유일하게 대구경북에 연고를 둔 삼성 라이온즈의 추락이 심상치 않다. '996-8837. 전화번호가 아닙니다'라며 최근 7년(2016~2022)간의 성적을 들이민 일부 팬들의 전광판 트럭 시위가 상징적이다. 2011~2014년 4년 연속 통합챔피언을 지내며 왕조시절을 향유했던 팀의 몰락치고는 너무 생뚱맞고 비참하다. 당연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분노 게이지가 계속 상승 중이다. 강경하든, 온건하든 토론의 장에 의견을 내는 팬들은 기본적으로 애착을 갖고 있다. 책임자 경질을 포함한 대대적인 개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가운데 희망고문에 가까운 의견도 없진 않다.
'잘했던 적이 있기 때문에 극적인 반등도 가능하다'는 희망고문이 사실, 사람을 미치게 한다. 선수 영입에서부터 육성과 기용에 이르기까지 왕조시절의 삼성과는 너무 차이가 난다는 것이 상당수 팬들의 의구심이다. 왜 이렇게 형편없이 무너졌는지에 대한 진단 및 분석과 적절한 조치가 절실하다는 방안도 제시한다. '졌지만 잘 싸웠다'는 격려와 수긍을 해줄 만한 경기가 손에 꼽을 정도로 사라졌고 투지와 근성도 과거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난이 거세다. 트레이드를 포함, 전반적인 운영이 구단의 몫이라면 결과에 따른 응원과 비판은 팬들의 권리이기도 하다. 묵묵히 지켜보던 상당수 팬들도 언젠가부터 고개를 갸우뚱하며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선을 넘었다'는 정서가 확산되는 모양새다.
반전의 계기가 절실해 보인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가운데 삼성그룹 차원에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언제 어떤 변곡점이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희망고문은 희망이 아예 없는 상황이라면 깔끔하게 포기를 하면 되지만 모든 가능성을 대입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심리를 표현할 때 주로 사용된다. 불행하게도 '희망고문'이 완성되려면 결과가 절망적이어야 한다. 희망없이 고문만 지속되는 흐름은 팬과 구단은 물론 삼성브랜드에도 바람직하지 않다.장준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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