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사고로 남편 잃은 명지 역, 박하선 "5년 전 동생 잃은 슬픔, 이번 작품으로 치유"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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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07  |  수정 2023-07-07 08:27  |  발행일 2023-07-07 제39면
하고 싶은 이야기 중에 유독 독립영화 많아

폴란드 현지서 참사 희생자 추모식 실제 참여

길 위의 차까지 멈춰선 채 애도하는 모습 인상적

명지에게 "그냥 버티며 살아"라고 위로해주고파

[시네 토크]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사고로 남편 잃은 명지 역, 박하선 5년 전 동생 잃은 슬픔, 이번 작품으로 치유
사진=엔케이컨텐츠 제공

살면서 한번쯤 삶이 막막해질 때가 있다.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모든 게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런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5일 개봉한 박하선·김남희 주연의 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갈길을 잃어버린 한 여인의 이야기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혼자가 된 '명지'가 깊은 수면 밑으로 침잠했다가 다시 돌파구를 찾아 떠오르는 과정을 담았다. 영화 '프랑스여자'로 국내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김희정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감독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고 난 뒤 남겨진 사람들이 행복했던 기억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명징한 언어와 담담한 화면으로 보여준다. 배우 박하선은 이 영화에서 남편을 잃은 명지를 연기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여인의 모습을 절제된 연기로 매우 실감나게 보여줬다. 실제 남편인 배우 류수영과 결혼 7년차를 맞아 제2의 전성기를 열어가는 배우 박하선을 만났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소감이 어떤가.

"정말 가슴 떨리는 시간들이다. 이번 영화는 대자본이 투입된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를 관람한 사람들이 전하는 입소문이 중요하다. 기자시사회 때 많은 기자분들이 참석해주셔서 힘이 났다. 팬 한 분이 그동안 제가 출연한 작품을 쭉 나열하면서 이번 영화가 좋다는 말을 해주셨는데, 너무 좋아서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올 상반기에 '첫번째 아이'를 개봉한 것에 이어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새 작품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최근들어 부쩍 독립영화 나들이를 많이 하는 듯한데 이유가 있는지.

"독립영화는 독립된 자본으로 찍는 영화를 말하는데, 사실 요즘에는 상업영화와 경계가 많이 허물어진 듯하다. 최근 제가 출연한 작품이 유독 독립영화가 많았던 것은 그 작품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제가 하고 싶은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얘기하면 저는 독립영화, 예술영화, 상업영화 가리지 않고 많은 작품을 하고 싶다. 좋은 얘기, 공감가는 이야기라면 굳이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많은 작품을 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김희정 감독과의 첫 작업인데, 함께 한 소감은.

"감독님의 전작 '프랑스여자'를 너무 재밌게 봤다. 뭔가 가감 없이 한 여자의 삶을 솔직하게 풀어놓고, 결론이라고 할 부분에 대해서는 관객 각자의 몫으로 맡기셨다. 보는 이들이 장면 장면에서 고민하고, 판단하게 하는 것들이 좋았다. 꼭 한 번 같이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기회가 온 것이다. 감독님은 촬영할 때도 요구하는게 없으셨다. 원신 원컷에 끝내시는데, 사실 머릿 속에 그림을 다 그리고 계셨던 것이다. 제게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1년에 한 번, 떠나간 이들을 전 주민들이 추모하는 폴란드 현지의 세리머니가 극중에 비중있게 담겼다. 실제 행사에 참여하면서 느낀 점이 있는가.

"낯설면서도 굉장히 강렬한 경험이었다. 길을 달리던 차와 사람들이 모두 그 자리에 멈춰서서 약 5분간 의식에 참여했다. 자동차들은 클랙슨을 누르고, 사람들은 실제로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1년에 한번씩 도시 전체가 커다란 슬픔을 해소하는 느낌이랄까. 사실 폴란드로 촬영을 가기 전에는 유럽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막상 가서 보니 도시의 80~90%가 무너져 어찌보면 폐허같았다. 담벼락에 총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무너진 건물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전쟁의 상흔을 안고 살아가는 면에서 묘하게 우리나라의 역사와 오버랩되고 정이 가기도 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개인적으로라도 꼭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박하선 배우는 2019년 발달장애가 있던 동생을 일찍 하늘나라로 보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기억이 있어서 명지라는 인물에 더 깊이 빠질 수 있었을 것 같다. 촬영하면서 먼저 떠난 동생 생각이 났을 듯한데.

"작품섭외를 받을 때만 해도 동생을 떠나보내고 방황하던 때였다. 촬영을 앞두고 원작소설을 읽는데, 어느 순간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렸다. 원작을 보고 울고, 시나리오를 보면서 울고, 장면을 찍을 때 울고…. 이번 작품을 찍으면서 참 많이 울었다. 동생을 떠나보내고 자책감으로 한동안 힘들었다. 사람들도 잘 못 만나고, 밥도 잘 안넘어갔다. 그랬는데 이 작품을 하면서 개인적으로도 많이 치유가 된 기분이다."

▶그동안 가슴에 품고 있었던 명지라는 인물을 떠나 보내게 됐다. 세상으로 나아가는 명지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냥 살아'라고 말해주고 싶다. 저도 그랬던 것 같다. 동생이 갑자기 죽고, 그냥 살았다. 너무 힘들어서 눈을 안 떴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어쨌든 그냥 다 지나갔다. 일도 많았고, 아이도 키워야 했으니까. 살다보면 좋은 일도 있고, 안좋은 시기도 있을텐데 그냥 살면 다 지나갈 거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는 부산, 전주영화제와 함께 국내 3대 영화제로 꼽히는 부천국제영화제 개막식 사회를 봤다.

"영화 찍고 나면 매번 영화제에 불러주시니 감사한 일이다. 열심히 찍고, 개봉을 해도 조용히 지나가는 영화들도 많은데, 이렇게 알아봐주시고, 개막식 사회자로도 불러주시니 참 감사하다."

▶라디오 진행자로도 이름을 알리고 있다.

SBS라디오에서 '씨네타운'이라는 데일리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데, 라디오 진행을 하니 좋은 점이 많다. 예전에는 울렁증 때문에 생방송이 무섭고 실수도 잦았는데, 1년쯤 매일 진행을 하다 보니 익숙해졌다. 사람을 만나고 인터뷰 하는 것들이 자연스러워졌다고 할까. 어제는 처음으로 SBS뉴스에 출연했는데, 떨리지 않았다. 저 스스로도 놀랍고, 신기한 변화였다."

▶20대때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가 최근 새로운 전성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결혼과 출산으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되돌아보면 20대 때는 숨쉴 틈 없이 바쁘고, 인기도 많았지만 제 삶은 늘 불안했다. 그랬는데 지금은 가정도, 생활도 안정감이 느껴져 감사하다. 사실 코로나 때 일도 없고, 생활비도 아껴야 해서 남편, 아이와 시골에서 6개월 정도 살았는데, 크게 불안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정성을 쏟다보면 일을 하지 않아도 울적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한 것 같다."

▶남편 류수영의 요리실력이 소문났다. 남편이 해주는 최고의 요리는.

"저희 집에서는 오빠가 저보다 월등하게 많은 요리를 한다. 오빠가 요리하면 제가 테스트를 하는 것이다. 가장 많이 한 요리는 라면이었는데 60번 이상을 끓였다. 개인적으로 떡볶이를 좋아하는데, 16번쯤 먹으니…."(웃음).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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