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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dreaming book-Library project,책 뜯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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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작가 |
한 권의 책 작품 제작
45일 전후의 시간 소요
조각칼 아닌 망치 사용
사진 해체 작업하다가
경찰 출동하는 해프닝
2018년, 대구문화예술회관 선정 '올해의 중견작가'로 선정된 이지현 작가가 5년 만에 개인전을 연다. 이 작가는 오는 8월13일까지 경북 청도군 '갤러리 이서'에서 설치작업 2점을 포함한 책과 사진을 해체한 작품 등 총 61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의 주요 화두는 '해체'다. 책과 사진을 낱낱이 해체했다. 책장과 사진 위의 문자와 이미지들은 예리한 조각칼로 파헤쳐져 새로운 시각적 오브제로 변모했다. 늘 익숙하고 당연하게 보였던 이미지들이 낯선 모습으로 전환돼 일상의 탈출을 원하는 몽상가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듯하다. 전시된 책과 사진 작품들은 부스러지기 직전의 외관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모습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이 작가는 "두 가지 관점에서 이번 전시를 봐주셨으면 한다. 책을 읽을 수 없게 만들어 스스로에 대해 근본적 물음을 던지려는 의도가 첫 번째, 오브제로 변환된 일상적 물건들이 새로운 미적 대상으로 여겨졌으면 한다는 것이 두 번째"라며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이미 익숙해져 버린 기존의 틀과 질서를 넘어서기 위한 '해체'가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명제가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지금껏 끊임없는 새로움에 목말라했던 이 작가의 예술 세계를 담담히 담아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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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023JU2602 dreaming photo' |
새로움을 갈망하는 욕망 뒤에는 지난한 작업과정이 있다. 단 한 권의 책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45일 전후의 시간이 걸리는 탓이다. 책의 모든 페이지를 분리한 후 조각칼로 일일이 글자를 파낸다. 이후 보존제를 칠하고 80℃ 온도로 종이를 구워낸 후 책을 재조립하면 작품이 완성된다. 사진 작품의 작업과정도 고단하긴 마찬가지다. 작가가 누워서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크기의 인화지 위에서 조각칼로 사진 위 이미지들을 해체한다.
초기에는 교과서를 많이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성경, 악보, 사전 등을 해체하며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 작가는 "처음에는 전통과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에서 도덕 교과서를 뜯었다. 책을 뜯어 읽을 수 없게 만듦으로써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물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진작업 역시 평범한 일상의 이미지를 해체하는 과정이다. 이 작가는 "식당에 걸려있는 달력의 꽃 이미지 등 다소 촌스럽고 일상적 이미지들을 보며 묘한 감정을 느꼈다. 직접 찍은 사진 중 가장 일상적이라 생각되는 사진을 해체의 대상으로 정한다. 한때 조각칼이 아닌 망치를 사용해 사진을 해체했는데, 작업실로 경찰이 출동하는 해프닝도 있었다"며 작업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이 작가는 조만간 대구에서 창작활동을 이어갈 것이란 계획을 밝혔다. 지금까지는 경기 파주의 작업실에서 작품활동에 집중했지만, 오는 가을부터는 대구 군위군 소보면에 마련한 작업실에서 작품활동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 작가는 "향후 자연과 관련한 이미지를 해체하는 작업에 대해 고민할 것 같다. 여러 프로젝트 작업을 통해 다양한 전시를 기획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지현 작가의 이번 전시는 지난 6월 개관한 '갤러리 이서'의 개관기념전으로 진행된다. 갤러리 이서는 약 500㎡의 갤러리 동과 부속 주차장을 포함하고 있으며 관람 편의를 위해 커피와 빵을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매년 6차례 정도의 초대전 및 기획전을 통해 작가들의 독보적 예술세계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갤러리 이서 석지영 대표는 "좋은 작품과 컬렉터를 잇는 가교가 되는 것은 물론, 작가들에게 도움 되는 갤러리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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