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에서] 5년 만에 개인전 이지현 작가, 책·사진 해체…일상에서 익숙하지 않은 美 제시하다

  •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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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20  |  수정 2023-07-20 08:00  |  발행일 2023-07-20 제14면

[갤러리에서] 5년 만에 개인전 이지현 작가, 책·사진 해체…일상에서 익숙하지 않은 美 제시하다
이지현 'dreaming book-Library project,책 뜯다'
[갤러리에서] 5년 만에 개인전 이지현 작가, 책·사진 해체…일상에서 익숙하지 않은 美 제시하다
이지현 작가

한 권의 책 작품 제작
45일 전후의 시간 소요
조각칼 아닌 망치 사용
사진 해체 작업하다가
경찰 출동하는 해프닝


"일상의 이미지를 해체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어떤 물음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2018년, 대구문화예술회관 선정 '올해의 중견작가'로 선정된 이지현 작가가 5년 만에 개인전을 연다. 이 작가는 오는 8월13일까지 경북 청도군 '갤러리 이서'에서 설치작업 2점을 포함한 책과 사진을 해체한 작품 등 총 61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의 주요 화두는 '해체'다. 책과 사진을 낱낱이 해체했다. 책장과 사진 위의 문자와 이미지들은 예리한 조각칼로 파헤쳐져 새로운 시각적 오브제로 변모했다. 늘 익숙하고 당연하게 보였던 이미지들이 낯선 모습으로 전환돼 일상의 탈출을 원하는 몽상가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듯하다. 전시된 책과 사진 작품들은 부스러지기 직전의 외관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모습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이 작가는 "두 가지 관점에서 이번 전시를 봐주셨으면 한다. 책을 읽을 수 없게 만들어 스스로에 대해 근본적 물음을 던지려는 의도가 첫 번째, 오브제로 변환된 일상적 물건들이 새로운 미적 대상으로 여겨졌으면 한다는 것이 두 번째"라며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이미 익숙해져 버린 기존의 틀과 질서를 넘어서기 위한 '해체'가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명제가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지금껏 끊임없는 새로움에 목말라했던 이 작가의 예술 세계를 담담히 담아냈다는 평가다.

[갤러리에서] 5년 만에 개인전 이지현 작가, 책·사진 해체…일상에서 익숙하지 않은 美 제시하다
이지현 '023JU2602 dreaming photo'

새로움을 갈망하는 욕망 뒤에는 지난한 작업과정이 있다. 단 한 권의 책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45일 전후의 시간이 걸리는 탓이다. 책의 모든 페이지를 분리한 후 조각칼로 일일이 글자를 파낸다. 이후 보존제를 칠하고 80℃ 온도로 종이를 구워낸 후 책을 재조립하면 작품이 완성된다. 사진 작품의 작업과정도 고단하긴 마찬가지다. 작가가 누워서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크기의 인화지 위에서 조각칼로 사진 위 이미지들을 해체한다.

초기에는 교과서를 많이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성경, 악보, 사전 등을 해체하며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 작가는 "처음에는 전통과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에서 도덕 교과서를 뜯었다. 책을 뜯어 읽을 수 없게 만듦으로써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물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진작업 역시 평범한 일상의 이미지를 해체하는 과정이다. 이 작가는 "식당에 걸려있는 달력의 꽃 이미지 등 다소 촌스럽고 일상적 이미지들을 보며 묘한 감정을 느꼈다. 직접 찍은 사진 중 가장 일상적이라 생각되는 사진을 해체의 대상으로 정한다. 한때 조각칼이 아닌 망치를 사용해 사진을 해체했는데, 작업실로 경찰이 출동하는 해프닝도 있었다"며 작업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이 작가는 조만간 대구에서 창작활동을 이어갈 것이란 계획을 밝혔다. 지금까지는 경기 파주의 작업실에서 작품활동에 집중했지만, 오는 가을부터는 대구 군위군 소보면에 마련한 작업실에서 작품활동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 작가는 "향후 자연과 관련한 이미지를 해체하는 작업에 대해 고민할 것 같다. 여러 프로젝트 작업을 통해 다양한 전시를 기획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지현 작가의 이번 전시는 지난 6월 개관한 '갤러리 이서'의 개관기념전으로 진행된다. 갤러리 이서는 약 500㎡의 갤러리 동과 부속 주차장을 포함하고 있으며 관람 편의를 위해 커피와 빵을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매년 6차례 정도의 초대전 및 기획전을 통해 작가들의 독보적 예술세계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갤러리 이서 석지영 대표는 "좋은 작품과 컬렉터를 잇는 가교가 되는 것은 물론, 작가들에게 도움 되는 갤러리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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