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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
김진표 국회의장이 또 개헌을 제안했다. 나흘 전 제75회 제헌절 경축사에서다. 내용과 형식이 예전과 달라진 그의 개헌론을 좀 더 들여다보자.
먼저, '최소 개헌'에 눈길이 간다. '여야 모두 찬성하고 대통령과 국민도 흔쾌히 받아들일 사항'만 하자는 원칙이다. 김 의장은 세 가지를 콕 집었다. △대통령 4년 중임제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폐지 △국무총리 국회 복수 추천제다. 60점(?)쯤 되는 대안이다. 굳이 필요치 않은 게 있고, 꼭 필요한 게 빠졌다. 어쨌든 쟁점을 최소화해 실행 가능성을 키운 건 진일보한 메시지다. 둘째, 로드맵을 더 구체화했다. 개헌안을 내년 4월 총선 때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게 핵심이다. '국회 상설 개헌특위'를 만들고 '개헌절차법 제정'도 추진한다고 밝혔다. 로드맵이 세밀해지면 실행 가능성이 더 커진다. 셋째는 타이밍. 충분한 숙성의 시간은 최적 환경을 만드는 더 없는 필요충분조건이다. 현행 헌법은 '1987년 산(産)'이다. '대통령 5년 단임제'가 뼈대다. 장기 집권 독재와 절연하고 민주주의 발전을 견인하는 법적 장치였다. 역대 최장수 헌법으로서 오랜 기간 역할을 했지만 그 사명을 다했다. 40년 가까운 세월 상전벽해의 변화가 있었으니 지금은 맞지 않은 옷이다.
몇 차례 호기를 놓쳤다. 1990년 3당 합당 때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은 내각제 개헌을 합의한 비밀각서를 만든 바 있다. 해당 문서가 세상에 공개되면서 흐지부지됐다. 셋 중 한 명에 '누설'의 의심이 간다. 참여정부 말에도 어렵사리 여야 합의를 이뤘으나 이명박 정부 출범으로 중단됐다. 2018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4년 연임제' '지방자치 강화'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발의했다. '관제 개헌'이란 반발에 부딪혀 물거품 됐다.
다음 개헌이 확정되면 10차 개헌, 제11호 헌법이 된다. 10차 개헌을 통해 헌정체제의 현저한 변혁이 이루어질 경우, 그때부터는 '제7공화국'이라 불린다. 국회 출입 기자와 3대 헌법 관련 학회 회원 10명 중 9명꼴로 '개헌'에 동의하고(출처: 국회의장실), 국민 62.8%가 찬성(조원씨앤아이)하는 일이다. 높아진 국민 기대와 변화하는 시대를 담아낼 더 큰 그릇이 필요하다.
'최소 개헌'에는 동의하지만, 개헌 대상 '3가지'에는 이견 있다. '대통령 4년 중임제'의 경우 국민 공감이 크고, '불체포 특권 폐지'는 여야의 대(對)국민 약속이다. 다만 '국무총리 국회 복수 추천제'는 다급한 현안이 아닐뿐더러 '책임 총리'의 역할을 담보할 장치는 꼭 '국회 추천'이 아니어도 가능하다.
대신 '지방 분권'과 '대선 결선투표제'가 포함되면 금상첨화겠다. '지방 분권'은 지방소멸·중앙집권·저출산·불평등·양극화 같은 한국병을 치유할 효과적 처방이다.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는 윤 정부의 테제(These·강령)가 아닌가. '결선투표제'의 시너지 효과는 다양하다. 선거 때마다 벌어지는 '단일화' 싸움을 멈추는 한편 국가권력의 정통성을 강화하고 국정을 안정시키는 법적 장치다. 다당제를 안착시켜 정치 양극화를 완화할 제도적 솔루션도 된다. "심정 같아서는 제3당이 나와 양당을 확 휩쓸어 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지만"(유인태 전 의원), 다당제를 안착시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진전이다. 개헌은 정치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출발점이 되기에 충분하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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