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경남 거제도 해금강, 바다 위 자연의 걸작…신화적 시간이 저기에 서 있네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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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21 08:04  |  수정 2023-07-21 08:05  |  발행일 2023-07-21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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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강은 퇴적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반적으로 수평 절리가 주도하고 있지만 수직 절리 또한 잘 발달해 있다.

거제의 남쪽에 똑 떨어져 앉은 갈도를 해금강이라 부른다. 바다의 금강산이라는 뜻이다. 금강산을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어떻게 생겼으며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대단한 아름다움을 금강이라 이름한다면, 저 남쪽 바다의 금강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겠다. 자신의 이름으로 우는 새들처럼 이름과 대상이 하나가 되는 풍경에 대해, 비록 충분치 않더라도.

거대한 해식애·검은 눈동자의 동굴
사자바위 등 천태만상 조각들 비경
수직벽 틈 사이 하늘 열린 십자동굴
세심하고 억제된 감동 소리없이 출렁

해금강 마을 끝자락 우제봉 벼랑엔
진시황 불로초 사신 이야기 전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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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동굴의 내부에는 네 개의 절벽 사이로 벽간 수로가 뚫려 있다. 자연과 시간이 조각해 놓은 바위들 속에서 문득 미륵을 본 듯하다.

◆바다의 금강산, 갈도

거제도의 남동쪽에 바다를 향해 뻗어 나간 곶을 갈곶이라 한다. 갈곶은 말단에서 다시 두 개의 곶을 이루는데 서쪽의 곶은 우제봉, 동쪽의 곶은 비교적 완만하고 이름이 없다. 그러나 그 이름 없는 곶의 남쪽에 아마 아주 오래전 한 몸이었을 법한 바위섬이 덩그러니 섰는데 그것이 갈도 또는 갈곶도다. 약초가 많이 자생해 약초섬이라고도 불린다. 이곳을 언제부터 해금강이라고 불렀는지는 알 수 없다. 줄곧 갈도라 불리다가 1971년에 명승 제2호 '거제 해금강'으로 지정됐으니 그때 혹은 그전의 언젠가라는 시시한 생각을 할 뿐이다.

손을 뻗으면 잡힐 듯 섬과 가까운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탄다. 배는 유람이라기에는 조금 급한 속도로 해금강을 향해 달려간다. 입심이 구수한 선장님의 설명이 쩌렁쩌렁하게 울리고 박수소리 웃음소리가 뒤섞인다. 갈도가 가까워진다. 첩첩이 쌓이고 눌리고 깎이고 어긋나고 떨어져 나가 뚝뚝 끊긴 듯 흐르는 벼랑과 바위들을 마주한다.

자연과 시간이 조탁해 놓은 절벽이 그 세밀한 모양을 스스럼없이 내보이고 있다. 바다가 오랜 시간을 들여 갉아낸 거대한 해식애(海蝕崖)와 해식동(海蝕洞), 쉼 없이 몰아치는 파도를 묵묵히 받고 있는 갯바위와 바위기둥이 눈앞에 펼쳐진다. 부처바위, 토끼바위, 금관바위, 촛대바위, 노인이 담뱃대를 물고 있는 모양을 한 조도령 바위, 신랑각시바위, 돛대바위, 거북바위, 바다를 향해 포효하는 늙은 사자바위, 해와 달이 뜨는 일월봉 등 천태만상의 바위들에 시선이 박힌 채로 바다를 달린다. 정수리를 뒤덮은 초목들과 벼랑의 틈에서 자라난 나무들이 손을 흔들고 검은 눈의 동굴과 눈이 마주치기도 한다.

속력을 내던 배는 서서히 갈도의 바위벽으로 부딪힐 듯 다가가며 신중히 느려진다. "큰 바위가 한 덩어리로 보이지요? 그러나 바닷속에서 넷으로 갈라져 있지요. 그래서 북쪽, 동쪽, 남쪽으로 배가 드나들 수 있는 수로가 있어요. 오늘처럼 바다가 잔잔하고 이 선장처럼 운전을 잘하면 수로로 들어갈 수 있지요. 석문으로 들어가면 네 개의 절벽이 솟아 하늘이 열십자 모양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십자 동굴이라 부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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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용이 천년 동안 수도한 끝에 승천했다는 용굴. 해금강에서 자생하는 희귀약초의 뿌리에서 흘러내리는 약숫물이 떨어진다 하여 약수동굴로 불린다.

◆십자로 열리는 하늘

배는 해금강의 갈라진 틈을 향해 나아간다. 알리바바의 문이 열리듯 천천히 육중하게 열리는 틈 사이로 배는 아슬아슬하게 그르릉 대며 들어선다. "자, 이제 난간 손잡이를 놓으세요! 손 다칩니다." 옥색 물빛에 흰 선을 그으며 나아가는 배, 사위는 벼랑의 그늘에 싸이고 수평선이 통째로 흔들린다. "하늘을 보세요! 하늘을 보세요!" 그러자 채워지지 않은 하늘이 십자로 열린다. 선장님의 말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높게 수직으로 뻗어 나가는 바위의 울림과 감흥이 소리를 지운다. 한껏 젖혀진 고개 위에 서툰 열십자가 조각되어 있다. 각각의 모양과 음영이 다른 바위들,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우리를 내려다보는 거인들 같다. 그들의 정수리에는 동백이며 풍란, 석란 등이 태양을 향해 자라나 있다.

배는 천천히 방향을 바꾸고, 새가 선회하듯 하늘이 움직인다. 가두어진 하늘은 왜 깊은가. 또한 섬세하고도 억제된 감동들은 우리를 얼마나 가볍게 하는가. 하늘은 우물처럼 깊고 바위는 추락처럼 아찔하며 정신은 중력에서 튕겨 나간 듯 부유한다. 문득 바위틈에 숨은 미륵을 본 듯하다.

◆해금강의 시간

십자동굴을 빠져나온 배는 다시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남쪽으로 향하며 용굴을 본다. 바다의 용이 천년 동안 수도한 끝에 승천했다는 굴이다. 해금강에서 자생하는 희귀약초의 뿌리에서 흘러내리는 약숫물이 떨어진다 하여 약수동굴로 불린다. 해금강의 남쪽을 돌아 서쪽으로 들어서자 우제봉의 남쪽 벼랑이 보인다. 저 석벽에 진시황제의 명령으로 불로초를 찾아 먼 길을 떠났던 서불(徐市) 일행이 머물면서 남긴 '서불과차(徐市過此)'라는 각자가 있었다고 한다. 서불의 흔적은 1959년 사라호 태풍으로 사라졌다는데 글자를 보았다는 노인들의 이야기가 그의 아들들과 또 그의 아들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해금강의 북쪽에는 사자바위가 있다. 맞은편 해금강에 뿌리를 두고 있는 바위는 병풍바위다. 3월, 9월, 10월에 사자바위와 해금강 사이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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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강의 북쪽에는 사자바위가 있다. 맞은편 해금강에 뿌리를 두고 있는 바위는 병풍바위다. 3월, 9월, 10월에 사자바위와 해금강 사이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다.

유람선이 해금강으로부터 멀어진다. 무수한 난투를 겪은 성채와 같던 해금강이 점점 부드러워진다. 해금강의 높이는 약 110m 정도 된다. 남북 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섬 전체가 수직 절벽의 해식애를 이루고 있다. 전반적으로 수평 절리가 주도하고 있지만 수직 절리 또한 잘 발달해 있다. 해금강은 퇴적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러 가지 퇴적학적인 특징으로 해석해 볼 때 호수연변 또는 호수에 쌓인 퇴적층이라 한다. 엄청난 시간이 흘렀다. 이 바위들이 겪지 않은 파도가 있을까. 바위가 사자가 되는 신화적인 시간이 저기에 서 있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55번 대구부산고속도로 부산 방향으로 간다. 대동톨게이트를 통과해 잠시 후 신항 방향 오른쪽 도로로 빠져나가 계속 직진, 가덕톨게이트 지나 직진, 360도 급커브길(송정 IC)을 지나 직진한 후 장승포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14번 국도를 타고 직진하다 함목삼거리에서 좌회전해 죽 들어가면 갈곶리 해금강마을이다. 해금강 유람선은 장승포, 도장포, 지세포, 와현, 구조라 등 많은 곳에서 운행하고 있다. 경유지와 시간, 요금이 조금씩 차이가 있다. 갈곶리 해금강 마을 선착장에서 출발한다면, 해금강 유람만 하는 코스는 50분이 소요되며 성인 1만5천원, 소인 9천원이다. 해금강이 포함된 외도 상륙 코스와 기타 섬 유람이 포함된 코스도 있으니 일정에 따라 조절하면 된다. 승선을 위해 신분증이 꼭 필요하며 파도가 높은 날에는 십자동굴 안으로 진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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