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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예술발전소 내 문화예술아카이브 열린 수장고에서 전시되고 있는 '예술가의 편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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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8월, 부산의 작곡가 이상근 선생이 제자인 임우상 작곡가에게 보낸 편지. '살인적인 대구 기후에 어떻게 지나시오?'라는 안부인사가 당시 대구의 더위를 짐작케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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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예술대학장을 역임한 김귀자 성악가가 국내외 예술인들로부터 받은 엽서와 편지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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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가톨릭대 무용학과 교수로 재직했던 김소라 무용가가 학창시절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받은 편지. |
통신 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먼 거리의 지인들과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던 유일한 수단은 편지였다. 특히 예술인들이 남긴 편지에는 그들의 작품세계는 물론 지역과 세대를 넘나들며 교류한 역사가 담겨있다.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대구 예술인들이 교류한 편지를 엄선해 보여주는 '예술가의 편지전'이 오는 9월17일까지 대구예술발전소 내 문화예술아카이브 열린 수장고에서 열린다. 지역의 문화 사료를 수집하는 대구시 문화예술아카이브 사업 추진 중 여러 예술인들의 기증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확보한 다양한 편지 중에 선별한 것들이다.
전시를 통해 세대와 국경, 장르를 넘어 교류한 예술인들의 철학 및 지역과 세대를 넘나드는 교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작고 예술인 이기홍(지휘자), 이경희(피아니스트), 김소라(무용가)를 비롯해 원로예술가 김귀자(성악가), 박말순(성악가), 장영목(합창지휘자), 임우상(작곡가), 최춘해(아동문학가) 등이 국내외 예술인, 가족 등과 나눈 편지들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부산의 작곡가 이상근 선생이 제자인 임우상 작곡가에게 1985년 8월에 보낸 편지에 담긴 안부 인사, '살인적인 대구 기후에 어떻게 지나시오?'를 보면 대구의 뜨거운 여름은 당시에도 전국적으로 유명세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 1963년 대구방송교향악단(대구시향의 전신) 창단 연주회를 축하하기 위해 보낸 번스타인, 몽퇴, 카잘스의 전보와 편지를 통해서는 국경을 초월한 예술가들의 응원 메시지를 만나볼 수 있다. 피아니스트 이경희 선생의 유품 코너에서는 이화여전 은사였던 그레이스 우드(Grace H.Wood)와 독주회를 열 수 있도록 피아노 구입을 도와준 미군부대 교회의 하임 쇼오트(Heim Soth) 목사에게 받은 편지를 선별해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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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피아노계의 대모'로 불리며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 교수를 역임한 이경희 선생이 독일 유학 중인 딸들에게 보낸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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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피아노계의 대모'로 불리며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 교수를 역임한 이경희 선생이 은사 그레이스 우드 교수로부터 받은 편지. 편지에는 '사랑하는 경희 동생'이라고 한글로 적어놓았다. |
작곡가 나운영이 합창지휘자 장영목에게 보내온 편지에서는 서울과 대구의 예술인들이 서로의 연주 레퍼토리를 공유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무용가 김소라의 어머니 최원경, 두 딸을 연주자로 성장시킨 피아니스트 이경희가 딸에게 보낸 편지에는 같은 예술인의 길을 걷는 자식들을 걱정하는 모정이 느껴진다.
이경희 선생의 딸인 윤진영(전 대구가톨릭대 교수 )씨는 "대구에서 후학을 양성하면서도 두 딸의 유학 뒷바라지를 해주신 어머님의 마음이 이제야 헤아려진다. 이번 예술가의 편지전을 통해 연주자로서 이경희와 연주자의 어머니로서 이경희의 모습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편지전을 보고 나니 어머니가 더 그립다"라고 전했다.
손 글씨를 좀처럼 만나보기 힘든 요즘, 예술가들의 필체를 보면 그들의 호흡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또 편지들을 통해 당시 생활상도 엿볼 수 있으며 당시 우표, 카드, 편지지와 엽서의 모양을 살펴보는 소소한 재미도 있다. 전시장에서는 편지 실물과 함께 예술인의 교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 사진도 영상으로 편집해 선보인다.
대구시립합창단 장영목 초대 지휘자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격동기를 거치며 문화예술로 도시를 일으켜 세우려 고군분투한 향토 예술인들의 생생한 기록이 담긴 편지들이 전시돼 있다. 전시를 둘러보며 당시 쏟았던 열정과 예술인들과 나눴던 우정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예술가의 편지전'을 통해 대구가 품고 있는 다양한 예술의 이야기들을 재발견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월요일 휴관.
글·사진=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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