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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영 논설위원 |
교복을 입고 다녔던 40여 년 전 까까머리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꾸중을 듣거나 체벌을 당했던 기억이 제법 있다. 청소·야간자습을 땡땡이쳤을 때도 그랬고 성적이 내려가거나 일정 점수 이하일 때도 통과의례처럼 겪어야 했다. 대부분은 원인이 있었으나 뚜렷한 이유를 모르고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지금은 '사랑의 매'라고 애써 표현하기도 하지만 요즘 관점으로 보면 상당수가 사실상 구타였고 폭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행동은 정당화되기 일쑤였고 대부분 부모님 역시 자식의 탓으로 여기고 학교와 선생님을 믿었다. 기본적으로 신뢰가 있었던 시절로 추억된다.
어물전 망신을 시키는 꼴뚜기는 어느 조직,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 과거 폭력을 일삼거나 부조리를 저지른 일부 교사의 이미지가 박제되면서 전체 교단의 권위는 도매금으로 추락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민주화바람이 불었고 인권에 대한 관심과 권리가 강조되면서 학교현장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비인간적이고 권위주의적이었던 교사들이 서서히 사라진 대신, 학생들의 권리가 빠르게 신장됐다. 그런데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교육 주체인 학교와 학생·학부모 간의 균형에 균열이 생기면서 교권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금이 간 자리에는 단체생활에 대한 개념이 무시되면서 극단의 이기만 똬리를 틀고 있다.
그 사이 강력한 돌발변수가 생겼다. 일부 몰지각한 학생과 학부모들의 행태가 걱정을 넘어 분노를 유발하고 있다. 최근 부산과 서울에서 잇따라 발생한 초등학생의 교사 폭행과 극단적 선택을 한 초등 담임교사 사건이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급적 말을 아끼고 인내하던 수많은 교사가 공분과 울분을 토하면서 절실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들이 겪었거나 전해 들은 학부모 악성민원은 그 내용이 가히 충격적이다. 툭하면 협박이고 위협이다. '아동학대' '정서학대' 등 갖다 붙이기 나름이다. 받아쓰기시킨다고 학대를 들먹이고, 떠들지 말고 친구에게 피해 주지 말라고 제재하면 욕하거나 고소하는 세상이다.
진상을 부리는 학부모들은 교사와 학교가 만만한 모양이다. 무지렁이처럼 뭘 해도 대들지 못하는 대상쯤으로 여기는 것일까. 정당하고 상식적인 민원은 교육현장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바람직하다. 하지만 몰지각하고 비상식적이고 파렴치한 의도가 담긴 악성민원은 이번 기회에 반드시 척결해야 교육이 바로 설 수 있다. 교권이 위축되고 추락하는 사이 선의의 학생들이 입은 피해는 누가 보상하나. 악성민원인들의 판단 및 행동근거는 오로지 자기 자식의 편안함과 안정에서 비롯된다.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의 성장을 준비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배려와 책임감 없이 극단의 이기를 경험케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이젠 '교사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자조적인 이야기까지 들린다. 거의 모든 교사는 평균보다 훨씬 높은 학력과 사명감을 갖고 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도 여전한데 '꼴뚜기'를 만나면 모든 게 두렵다. 터무니없고 인신공격에 가까운 민원은 진실 여부를 가려 책임을 물어야 근절이 가능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4일 교권강화를 위한 교육부 고시 제정과 자치조례 개정 추진을 지시했다. 작금의 교단파괴 현상은 지나친 온정주의가 불러온 괴물일 수 있다. 피해자를 외면하고 가해자 인권에 위선적으로 연연하는 현실이 더 이상 방치돼서는 곤란하다.장준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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