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앞날이 구만리 같은 어느 교사의 죽음

  • 곽흥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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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8-01  |  수정 2023-08-01 08:47  |  발행일 2023-08-01 제21면

[기고] 앞날이 구만리 같은 어느 교사의 죽음
곽흥렬(수필가)

일전에 20대 교사가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등졌다는 뉴스가 신문 지상에 떴다. 수도 서울의 교육 1번지로 통하는 서초구 어느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이었다. 앞날이 구만리 같은 사람이 뭣 때문에 그런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일까. 이 비극적인 소식을 접하고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극성 학부모의 등쌀에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니, "어찌 이런 일이!" 하는 탄식이 절로 터져 나왔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변호사인 한 학부모가 "내가 변호산데…" 어쩌고저쩌고하면서 몰아세웠다고 한다. 아직은 세상의 때가 덜 묻은 사회 초년생이었기에 그 심리적인 압박감을 견뎌내기 힘들었던가 보다. 일개 변호사가 뭐 그리 대단한 위력을 지녔다고 자기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에게 '재미없다' '가만 놔두지 않겠다'는 등의 말로 협박을 가하며 갑질을 부렸단 말인가. 생각하면 기가 차고 매가 차서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그리 잘났으면 제가 스스로 가르칠 일이지 뭐하러 학교를 보내어 이런 비극을 불러일으켰단 말인가.

굳이 군사부일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흔히들 스승은 부모나 다름없는 존재라고 한다. 지난날의 학부모는 자식이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고자질해도 선생님 탓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나무랐다. 그것이 자식을 사람 만드는 길이라고 여겼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고 한 옛 성현의 가르침은 이제 헌신짝이 되고 말았다. 일부 몰지각한 학부모는 자기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을 발가락에 낀 때만큼도 여기지 않는다. 교사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고압적이다 보니 그 밑의 자식이 올바르게 자랄 리 만무하다. 학생이 자기를 가르치는 교사를 구타하는 정말 결코 있어서는 아니 되는 일마저 심심찮게 일어나는 형국이다.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부모는 아이의 첫 스승이라는 말도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 일단 맡겨 놓은 이상 자기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을 존중해야 아이도 본을 보고 그 선생님을 존경할 것 아닌가. 오죽했으면 요즈음의 선생은 그림자 빼고는 다 밟힌다는 우스개까지 생겼을까.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는 소리가 나온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무리 그랬어도 이렇게까지 참담한 상황일 줄은 미처 몰랐다. 선생님의 사기가 하루가 다르게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피해가 결국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지는 묻지 않아도 그림이다.

이 나라는 희망이 없다. 이런 탄식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하나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지금 우리의 교육은 백척간두에 서 있다. 물론 아이 탓, 학부모 탓만을 할 수는 없겠다. 스승이 스승답지 못한 경우도 얼마든지 없잖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옳고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옳다고, 세상일이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 아니던가.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큰 줄기를 놔둔 채 지엽을 논해서는 가당찮은 문제일 터이다.

이 나라 교육이 장차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한때 일선에서 후세 교육에 열정을 쏟았던 사람으로, 오늘의 우리 교육계 상황이 하도 답답하고 서글퍼서 가져 보는 소회다.

곽흥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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